유튜브로 눈 돌린 ‘은둔고수’ 86세대들

정용인 기자

각분야 전문식견 가진 중장년층 진출이 바꿀 판도 변화는

베이비부머 세대, 한국에서 86세대의 유튜브크리에터 진출은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권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제 각계 분야에서 은둔하던 전문가들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하고 있는 김부겸 후보의 유튜브 채널이 제작되는 모습 /김부겸 캠프 제공

베이비부머 세대, 한국에서 86세대의 유튜브크리에터 진출은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권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제 각계 분야에서 은둔하던 전문가들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하고 있는 김부겸 후보의 유튜브 채널이 제작되는 모습 /김부겸 캠프 제공

“생업으로 강사를 하다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20년 일하다 어느 날 문득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뭐라 해야 할까요,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왔다는 느낌 같은 걸까요.”

김찬휘씨(55)의 말이다. 기자가 받은 김씨 명함의 직함은 청년플랫폼 위드위드 대표였다.

뒷면엔 김찬휘TV 유튜브 채널의 로고와 주소가 박혀 있었다.

유튜브 채널엔 그가 맡은 직함들이 연도별로 적혀 있다.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대표직함이 ‘김찬휘TV 채널 운영자’라고 그는 말한다.

■‘1타 영어강사’는 왜 유튜브에 주목했나

사실 김씨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유명인사다. 김씨는 ‘티치미’라는 무료 인터넷 강의(인강)를 통해 영어인강 시대를 열어젖힌 ‘1타 강사’ 출신이다. 정치권 ‘3김’에 빗대 다른 두 명의 영어강사와 함께 ‘영어강사의 3김 전성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위키 사이트엔 그래머 바이블 강의로 유명한 그에 대한 항목이 따로 있다. 그러나 ‘운동’ 관련으론 같이 ‘티치미’를 만든 수학강사 한석원 선생과 함께 “운동권 경력이 있다” 정도만 알려져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84학번인 김씨는 1987년 대학 동기 박종철씨가 고문치사를 당할 때 감옥에 있었다.

속칭 ‘유인물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개헌운동 관련 민주헌법 제정을 다룬 유인물을 만들었다가 당시 치안본부가 이름을 지은 ‘민족민주동맹’이라는 좌경지하조직의 주모자로 구속됐었다”라며 “사실 우리는 잇따른 시국사건에 이은 자그마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감옥에 있는데 박종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어요.”

그게 김씨의 경력에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가 포함되는 이유다.

“(전) 영어 인강 1타 강사 김찬휘의 화려한 귀환! 정치, 경제, 사회 주요 이슈를 꼼꼼하게 알려주는 ‘돌아온 차니쌤’[김찬휘TV]”

채널 정보에 소개된 유튜브 소개다. 구독자 수는 1만4500명. 누적 조회수는 135만여회다.

주로 과거 영어강의만 등록되어 있던 채널에 ‘빅데이터는 빅브라더’라는 시사문제에 대한 ‘발언’을 첫 등록한 것은 지난해 4월 17일. 그 뒤 연동형 비례제, 기본소득, 최근에는 부동산 이슈까지 꾸준히 현안이슈를 두루두루 다루고 있다.

콘텐츠 내용을 보면 종전 시사 유튜버들과 다르다. 유명강사 출신이어서인지 기초개념부터 첨예한 쟁점 이슈까지 꼼꼼하면서도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시쳇말로 ‘찐’의 출현이다. 그는 자신의 방송은 시사라기보다 교양방송을 지향한다고 덧붙였다.

“돈 벌려고 만드는 것 아닙니다. 그렇다고 조회수 욕심이 왜 없겠어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보고 건전하게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앞으로 우리나라가 변화할 계기가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만드는 겁니다.”

컴퓨터 공학과 교수로 IT 전문가로 방송에서 익숙했던 곽동수 전 교수 역시 최근 ‘곽동수TV’로 돌아왔다.

구독자 수는 8만6900명. 채널은 10여 년 전에 만들어 뒀지만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 22일부터다. ‘원맨 평론방송’을 지향하는 곽 전 교수는 하루에 두 번 방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매일 아침 30~40분 분량으로 뉴스를 클리핑하는 아침뉴스를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오후에는 그날의 특정 이슈를 집중 조명하는 생방송을 내보낸다.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유튜브 방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 즉 내용이 아니라 캐릭터와 구독자들과의 관계라고 말한다.

“일일연속극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구독자들 눈에 들도록 매일 같이 성실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 경우 청와대나 국회, 아주 중요한 메이저 이슈만 건드리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집권당인 민주당이 잘못하는 것을 씹는 것을 주요 콘텐츠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보수 유튜버들이 씹고 있는데 뭐하러 저까지 거기에 동참할 필요가 있어요. 유시민 장관이 과거 노무현재단 행사에서 자신은 이 정부의 어용지식인이 되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렇다고 저는 무조건 편들 생각은 없습니다. 제 방식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비교적 잘하는 야구선수도 3할밖에 못 때리는데 100% 잘할 수는 없지 않느냐,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다’는 식입니다.”

이필성 샌드박스네트워크 대표가 최근 펴낸 책 <나는 오늘도 콘텐츠를 팝니다>를 보면 흥미로운 통계자료가 제시되고 있다.

지난해 연령대별 유튜브 사용시간을 비교해보면 86세대, 즉 50대의 사용시간이 101억분으로, 2위를 차지한 10대(89억분)나 3위 20대(81억분)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유튜브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세대가 50대다.

김찬휘 대표나 곽동수 전 교수의 사례는 이들 86세대가 이제 콘텐츠 소비를 넘어 본격적으로 생산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표징이다.

<아무나 요리>, <편식방> 등 유튜브 채널을 제작하는 서득현 PD는 “10대와 20대는 학업에, 30·40대는 생업에 매달리는 반면 육아와 생업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50대가 적극적인 소비층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PD에 따르면 86세대 특유의 시사에 대한 관심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20대 초반 출연자들이 ‘19금 토크’를 하는 코너가 있는데 거기서도 세대조사를 해보니 50대가 1등이다. 스마트폰이 워낙에 많이 보급되어 있고 장년 세대들도 익숙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하고 있다.”

김찬휘TV/유튜브 캡처

김찬휘TV/유튜브 캡처

■“촛불혁명이 연 해방 경험의 산물”

“수익창출에 개의치 않는다”고 밝힌 김찬휘씨는 내용이나 기획·구상은 혼자 해내고 있다. 영상에서 사용하는 PPT만 반상근하는 직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한 달에 10만원에서 20만원 가량의 수익이 들어오지만, 사무실 운영비용이나 임대료, 반상근 직원 월급은 개인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86세대들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흐름에 대해 “지난 2016년 촛불혁명이 가져온 중요한 해방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그동안 침묵하며 발언 기회를 못 가지던 사람들이 촛불을 통해 할 말을 하는 해방의 경험을 가진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과거 운동경험을 가진 70년대, 80년대 학번 세대들이 ‘주권자전국회의’, ‘직접민주주의연대’와 같은 단체를 만들어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런 직접민주주의와 유튜브가 친화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자기 세대들, 그리고 다른 젊은 세대들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주체 형성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곽동수 전 교수는 최근 유튜브 방송 촬영 전용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자신의 채널에서 시사현안 전문가를 초빙해 대담을 나눌 목적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콘텐츠로 이제 막 유튜브에 뛰어들려고 하는 자기 세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콘텐츠를 잘 만들까에 대한 5분 영상 시리즈를 만들어 제공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유튜브 잘 만드는 법을 5분짜리로 100강 정도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인터넷 강연 세바시(세상을바꾸는시간)의 첫 연사였다. 세바시의 경우는 15분짜리 강의였지만 지금 시대는 5분도 길다. 5분 이내에 정말 도움이 되는 ‘핫팁’을 제시할 수 있다. 유튜브를 잘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결국 유튜브로 돈을 잘 벌고 싶다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은데, 어떤 사람은 월급쟁이처럼 매달 들어오는 돈이 중요한 사람도 있지만 1년 농사지어 파는 사람처럼 1년 후에나 결과를 알 수 있는 콘텐츠도 있다. 거짓말을 보태면 만약 생업을 접어도 이걸로 평생을 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제 또래에 비해 젊게 사는 편인데-곽 전 교수는 1964년생이다-음악이나 영화, 정보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관심사를 충족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도 만들 자신이 있다.”

곽동수TV/유튜브캡처

곽동수TV/유튜브캡처

■자기과시형을 넘은 은둔고수형의 등장

서득현 PD는 “이제 막 시작하는 입장이라면 스마트폰만 있으면 웬만한 것은 혼자서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유튜브 크레이터의 매력 포인트”라면서도 “이를테면 인생 3막의 본격적인 ‘업’으로 생각한다면 생각하지 않았던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찍는 것은 혼자 할 수 있지만, 편집은 생각보다 시간이나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 실제 편집까지 고려하면 3~5분짜리 짧은 영상도 하루에 5~6개 이상 만들어 올리기는 사실상 힘들다는 전언이다. 전도유망한 미래직업으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부각되면서 편집만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이트까지 생겼지만 웬만한 돈 좀 버는 유튜브의 경우 편집비용만 30만~50만원이 들며, 전문편집자를 고용하는 경우 월 200만원은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직 국회보좌관 출신으로 헬마우스와 김부겸TV CP를 맡고 있는 하헌기씨는 “유튜브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는 86세대들을 보면 개인 홍보수단으로 여기거나 대부분 과거 인터넷 초창기의 게시판 논쟁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사전 기획이나 편집에 대한 고민 없이 시사이슈에 대한 개인평론을 길게 하는 식의 준비 없는 방송은 오래가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송경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교수는 “소셜미디어나 팟캐스트 등 뉴미디어의 트렌드가 메인 콘텐츠보다는 패러디를 특징으로 하는 B급 문화와 정서가 지배했고, 그런 흐름이 경로의존성으로 유튜브까지 이어져 온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친구들의 4~5년 전 영상만 봐도 지금과는 비교 불가능하게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종전의 중·장년층 크리에이터 활동이 소셜미디어 등 새로운 흐름에 열심히 동참해온 자기과시형 참여가 많았다면 지금은 은둔고수형, 즉 생업과 육아 때문에 나올 수 없던 중·장년 세대가 자신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거나 특히 콘텐츠 제작환경이 급속도로 좋아지면서 본격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뛰어드는 흐름이 나오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물론 여전히 생업이나 육아에 묶인 대다수는 시청층에 머무르겠지만, 앞으로 새롭게 등장했거나 등장할 은둔고수형의 활약은 충분히 주목할 대상이며, 과거 젊은층의 전유물로 봤던 온라인 동영상 시장의 판도도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변화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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