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만든 군항의 중심을 밟고 선, 최초의 충무공 동상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35) 진해 이순신 장군 동상

1971년, 2022년 진해 이순신 장군 동상.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71년, 2022년 진해 이순신 장군 동상.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최근 영화 <한산>의 흥행으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세종대왕과 함께 우리 국민이 가장 추앙하는 역사 인물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동상이 가장 많이 제작된 인물도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일 것이다.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두 인물의 동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특히 이순신 장군 동상은 전적지를 비롯해 그와 연고가 있는 장소마다 세워져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로 사거리를 지키고 서 있는 동상이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후원하여 김세중 조각가가 만든 이 동상은 지금까지 숱한 논란을 낳았다. 그 논란은 장군의 얼굴과 칼, 갑옷의 고증이 잘못되었다는 지적, 칼을 오른손에 잡고 있어 장군을 왼손잡이로 묘사했다는 의견, 고개를 숙이고 있어 패장을 연상케 한다는 주장, 세종대왕을 기념하는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을 세운 박정희의 정치적 의도 등 실로 다양하다.

그럼 전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충무공 동상은 어디에 있을까? 사진과 같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우뚝 서 있다. 이 동상은 1950년 11월 해군 창설 5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진해통제부사령관 김성삼 장군이 발의하고, 해군과 지역 유지들이 협력하여 건립하였다. 1952년 4월에 거행된 제막식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 동상의 원형은 윤효중 조각가가 만들었으나, 당시 5m 가까이 되는 대형 동상을 주조할 만한 시설이 없어 함선과 병기를 만드는 해군공창(海軍工廠)에서 주물을 제작하였다. 충무공의 후예인 해군의 도시 진해에 해군의 노력으로 최초의 장군 동상을 세운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러일전쟁 후 일본이 만든 군항인 진해시가지 중심을 장군이 밟고 서 있는 광경도 참으로 상징적이다. 그리고 진해 앞바다는 장군이 승전한 장소이기도 하다.

1971년 사진을 보면, 양손으로 칼을 세워 잡고 서 있는 모습이 조선 왕릉의 무인석(武人石)을 닮았지만, 왼발을 살짝 앞으로 내밀고 가슴을 젖힌 채 바다 쪽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당당함이 느껴진다. 2022년 사진에서 동상은 변함이 없지만, 주변은 크게 변하였다.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로 인해 진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장복산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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