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세월을 넘고 넘어, 도도히 흐르는 ‘논개의 충절’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진주 남강과 촉석루

남강 촉석루의 1971년(왼쪽)과 2021년의 모습.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남강 촉석루의 1971년(왼쪽)과 2021년의 모습.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많은 도시는 강을 품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는 남강을 끼고 자리 잡았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강의 북쪽에 먼저 시가지가 만들어졌고, 강의 남쪽으로 시가지가 확장되었다. 따라서 진주성을 비롯한 오랜 건축물들은 사진 왼쪽의 강북에 있다. 사진 왼쪽의 바위 벼랑 위에 서 있는 누각이 촉석루(矗石樓)이다. 촉석루는 고려 후기에 처음 지었으며, 남강 변에 솟은 뾰족뾰족한 바위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전쟁 때에는 군사지휘소로, 평화로운 시기에는 과거 시험장으로 이용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6·25 때 불탄 뒤에 재건한 것이다.

두 사진에서 모두 촉석루 아래 절벽과 약간 떨어져 남강 위에 솟아 있는 네모반듯한 바위가 보인다. 1971년의 사진에는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데, 바로 의암(義巖)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함락한 왜군은 촉석루에서 연회를 벌였다. 여기에 참석한 기생 논개는 열 손가락 모두에 가락지를 낀 채, 왜장을 의암으로 유인해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다. 가락지를 낀 이유는 왜장을 끌어안은 손이 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71년의 사진을 보면 강 북쪽과 남쪽을 이어주는 다리가 보인다. 1927년 건립된 진주교이다. 경남에서는 처음으로 철골구조로 지은 다리로, 역시 일본과 얽혀 있다. 진주교는 1925년 일제가 진주 사람들의 거센 반대 속에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기면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지어준 다리이다. 일제는 1932년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이전할 때도 보상책으로 공주 금강에 금강교라는 철교를 놓았다. 진주교의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1980년대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였다. 현재 사진에 보이는 아치 모양의 다리이다. 이 다리의 교각은 거대한 가락지 모양의 황동 조형물로 감싸여 있다. 진주교는 논개를 기리며, 충절의 고장 진주를 상징하는 다리가 된 것이다.

10월의 밤이 되면, 남강은 강물에 띄워진 형형색색의 등불로 수놓아진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유등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축제는 임진왜란 때 남강에 유등을 띄워 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한편,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하였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신문의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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