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등산 취사 연기에 피어오르는 ‘라떼의 추억’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원

관악산 연주대

1971년 관악산 연주대 | 2021년 관악산 연주대.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71년 관악산 연주대 | 2021년 관악산 연주대.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도를 닦았다는 관악산 연주대 사진인데 멀리 보이는 ‘응진전’ 암자는 대학합격 기원의 효험이 최고라는 기도터다.

새해 들어 악산(험한 산)이라 불리는 관악산 산행을 시작한다.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해도 될 만한 등산복, 등산화, 스틱을 갖추고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 있는 등산로를 걸어 안전로프가 설치된 목재계단을 밟고 올라가 마침내 산 정상이다.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속으로 ‘야호’ 하고 외쳐본다. 요즘은 소음공해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들에게 공포감을 준다고 해서 “야호” 금지다. 음주, 흡연 적발 시 벌금이 부과되고 불을 피우다 걸리면 방화범으로 구속까지 각오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연보호에 안전한 등산이다.

반세기 전인 1971년 관악산에서 남자 등산객이 나뭇가지를 장작처럼 모아 불을 지펴 밥을 하는 사진이다. 연주대 깎아지른 절벽 위, 난간도 없는 응진전에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변변한 등산장비도 없이 평소 입던 옷차림으로 지정된 코스가 있을 리 없는 봉우리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사정권 정신으로 기어이 올라가 ‘야호’를 경쟁하듯 외친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안전불감증에 위험한 등산이다.

등산용품은 산을 타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1970년대 등산용품의 핵심은 코펠, 빠나(버너), 고체연료 그리고 슬레이트이다. 정확히는 취사용품이다. 1급 발암물질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는 지금에야 폐기처분 건축자재이지만 그 당시에는 고기 굽는 불판 대용으로 넘버원이었다.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초가지붕을 대체했던 건축자재인 슬레이트의 굴곡 사이로 산에서 구워지는 돼지고기 기름이 자연스레 흘러내렸다. 산불을 걱정하기엔 우거진 숲이 조성되지 않은 벌거숭이산, 오죽하면 초등학교 동요 ‘메아리’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메아리가 살게시리(끔) 나무를 심자”라는 가사가 있을 정도로 1970년대 한국의 산은 메아리도 죽어버린 황무지였다.

50년 세월이 흘러 지하철·버스 노선 등 접근성 좋은 곳으로 등산로가 만들어지면서 1971년 사진 속 관악산 연주대 산길은 사람들 발길이 끊기면서 숲으로 변했다. 산에서 불을 피워 밥을 해먹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진을 보면서 박정희 독재정권하에서 1년 365일 쉬는 날도 없이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산에서 취사, 흡연, 음주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그때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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