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휘 녹색당 대표

서북청년회 본산으로 반공 주도…교회 안팎에선 상반된 기억

영락교회 1971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영락교회 1971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영락교회 2023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영락교회 2023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남산1호터널을 나와서 쭉 내려가 퇴계로를 지나면 왼쪽에는 명동성당, 오른쪽에는 영락교회가 있다. 지난 12월2일은 영락교회 창립일이다.

1945년 세워진 영락교회는 한국 최초의 대형교회로서 예장통합 교단을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이다.

영락교회의 뿌리는 북한에 있다. 특히 1907년 대대적인 회개와 고백 운동으로 개신교의 대부흥을 연 평양은 일제강점기에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며 한국 개신교의 교세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평양에서 교사·교목으로 활동하다 신의주에서 목회를 이끌었던 한경직 목사는, 해방 이후 이북에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자 월남해 베다니전도교회를 창립하니 그것이 영락교회의 시작이다.

영락교회는 월남한 기독교인들의 마음의 안식처이자, 월남에 얽힌 역사를 공유하는 단단한 신앙공동체가 되었다. 특히 이북에서 신앙을 탄압받고 토지개혁 와중에 땅을 잃고 심지어 가족이 처형당하기도 한 체험은 신도들의 강한 반공의식의 근거가 되었다. 대표적 극우 테러 사병 조직인 서북청년회는 바로 영락교회 청년들이 조직했다. 전반적으로 사회주의 지향이 강했던 남한 정세를 뒤집기 위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지원 아래 서북청년회는 무수한 암살과 테러를 자행했고, 제주도와 보도연맹에서는 대량학살을 저질렀다.

서북청년회의 성립이 한국 개신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서북청년회 출신 중에는 후에 목사나 교회 관계자가 된 사람이 많았고, 이것은 한국 개신교 일부의 극단적 반공주의와 군사독재 정권 옹호의 흑역사로 이어졌다. 한경직 목사는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특사로 파견되었고 이후에도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지지·지원했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에는 보수 기독교계를 모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창립을 주도했다. 그래서 영락교회는 교회 안 사람들과 교회 밖 사람들에게 다른 곳으로 기억된다.

영락교회 본당은 1949년에 짓기 시작해 1954년에 완공된 ‘네오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증축과 보수를 거듭했지만 석조 건물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최근 사진에는 계단 오른쪽에 ‘카타콤’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카타콤은 로마 등에 있던 지하묘지인데, 기독교 박해 시대에는 비밀 예배 장소로 쓰였다. ‘북한복음화’ 등을 목적한 신앙심의 발로겠지만, 한 번도 신앙의 박해를 받은 적이 없는 대한민국 안의 영락교회 카타콤은 영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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