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휘 녹색당 대표

한때는 부산의 번화가, 지금도 패션거리지만 왠지 되찾을 수 없는 ‘옛 영화’

부산 광복동 1971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부산 광복동 1971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부산 광복동 2022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부산 광복동 2022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광복동(光復洞)은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의 행정동이다. 지금의 부산은 조선 시대에는 ‘동래부’로 불렸고, 부산포는 동래부의 작은 지역을 가리켰을 뿐이다. 그러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의해 부산포 일대가 개항장이 돼 일본의 조계가 형성되었고, 1910년 국권피탈 후에는 동래부 전체가 ‘부산부’로 개칭됨에 따라 부산은 이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발전하게 됐다.

당시 개항장 지역은 지금의 중구·동구·서구와 영도구에 해당하는데, 중구의 광복동에는 개항 이전에 이미 일본과의 통상 지역인 ‘왜관’이 설치돼 있었기에 개항 이후 중구는 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부산의 최고 번화가가 됐다. 그 중심인 광복동은 당시 ‘긴 길’의 의미로 ‘장수통(長手通)’이라 불렸는데, 해방과 함께 ‘광복동’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광복동은 매립에 의해 생긴 남포동과 함께 오랫동안 부산을 대표하는 번화가였다. 관객 1000만명 돌파 영화로도 유명한 <국제시장>이 광복동에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외제’와 패션, 유흥과 관광의 중심지였다. 1971년 사진을 보면 양복점, 기뿐소리사, 내쇼날전파 등의 간판뿐만 아니라 거리를 오고 가는 ‘고급’ 승용차만 봐도 당시 광복동의 영화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1995년 서면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의 탄생으로 상징되듯이 광복동은 서면에 최대 상권의 지위를 넘겨주게 되었고, 이곳은 ‘도심공동화’를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다. 돈과 상인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이곳을 다시 살린 것은 1996년에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BIFF)이다. 이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발전한 부산국제영화제의 본거지는 중구 남포동이었다.

남포동 일대 영화관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술잔을 기울이며 그날 본 영화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BIFF 키드’들이 영화제를 키운 주역들이다. 하지만 부산의 돈의 중심이 중구에서 해운대구로 넘어간 것과 똑같이, 2011년 해운대 센텀시티에 ‘영화의 전당’이 생기면서 남포동 시대는 사라져 버렸다. 2022년 사진의 광복동은 ‘패션거리’로 조성돼 있지만, 과거의 화려함은 되찾을 길이 없다.

지금 부산에서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영화제는 정치적 외압에, 코로나19에, 지원 삭감과 조직적 내홍에 신음하면서 비틀거려 왔지만, 영화인들의 뚝심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영화는 주로 해운대에서 상영되지만, 커뮤니티비프 행사는 남포동의 극장에서 열린다. 오늘 부산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고, 부산역에서 걸어가 영화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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