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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원회 책자 <월간 인권> 제목 : <손들어!> 라는데 손을 들지 못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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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12회 작성일 20-04-1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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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원회 책자 <월간 인권> 

제목 : <손들어!> 라는데 손을 들지 못한 기억....   
글쓴이 : 김형진
상업적 목적으로도 마음껏 사용하세요



1989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단기사병(일명 방위)으로 훈련소에 입소했다. 입소 첫날 저녁, 내무반에서 현역군인이 나를 비롯한 훈련병들에게 <사병 신상명세서> 종이를
나눠주면서
“집안에 국회의원 같은 친척 있는 사람 손들어”
라고 했다. 그러자 거주지가 강남구인 훈련병 몇몇이 손을 들어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 관직을 말하며 큰 아버지, 외삼촌 등의 호칭을 그 뒤에 붙였다. 그들의 손드는 모습에는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손을 들지 못한 본관이 경주 김 씨인, 나(김 형진)은 ‘아버지께서 틈만 나면 경주 김 씨는 왕족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신라 왕 중에 한명을 말해야 하나?
왜 우리 집안에 빽 있는 사람이 없을까?’ 잠시 아버지를 원망했다.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훈련소에서 경계근무 수하 요령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를 배우면서
나는 ‘손들어’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1970년대 중반, 초등학교 5학년 학기 초로 기억한다. 담임선생이 학생들의 가정 환경을 공개적으로 조사하면서
“자가용 있는 사람 손들어봐”
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자가용 학생은 담임선생의 사랑을 독차지 할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담임선생이 나눠준 <가정환경 조사서> 용지를 아버지는 시험 답안지 작성하듯 적어나갔다. 집안에 피아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이 있으면 동그라미를 치고, 없으면
그냥 통과하는 문항뿐만 아니라 부모의 재산 정도, 본적, 직업에 최종학력까지 적어야 했다. 아버지는 대졸, 어머니는 고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본 내가 어머니에게 따지듯 
“엄마는 왜 대학 안 갔어?”
하고 묻자,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
“우리 때는 대학이란 게 없었어.....”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유신정권 시절, 충분히 유언비어 유포 죄 감이었다. 뻔한 거짓말을 하는 어머니가 미웠다. 그런 철없던 내가 부모가 되었다.
2003년 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내 처가 식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가정환경 조사서>였다. 딸 아이 학교에서 나눠준 거였다.
그 후 , 딸 아이 초등학교 숙제로 <아빠 발 그리기>, <아빠 발 씻기고 소감 쓰기>, <아빠 직업탐방 써오기> 등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발뒤꿈치에 굳은 살 배도록 고생하는 아빠한테
고마워하자는 취지인거 같은데  만약에 이혼한 가정이나 아빠가 사망했거나 실직 상태인 경우엔 학생들이 그 숙제를 어떻게 해올지 선생들은 고민하지 않는 것만 같다. 어떤 교육이 아이가 받을 상처보다 중요한가?
2009년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이 나한테 말했다.
“자기 아빠 직업이 ‘사’자인 애들은 아버지 직업을 검사, 변호사, 의사라고 적는데 별 볼일 없는 아빠들은 회사원이라고 적는다”
가정환경 조사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서로 ‘차별’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그리고 별 볼일 없는 아빠들의 아들, 딸, 학생들을 선생은 ‘편견’이라는 선글라스를 끼고 볼 수밖에 없다.
<가정환경 조사>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해서 몇 년 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각 학교 재량에 따라 실시되고 있다. 몰지각한 몇몇  선생들은 대놓고
학생들에게 “엄마, 아빠랑 같이 살지 않는 사람 손들어봐!” 뿐만 아니라 “다문화 애들 손들어”라는 <손들어!>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다
<손들어(봐)!>는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로 전쟁터에서 군인이 적을 향해 총을 겨눌 때만 사용해야 한다. <가정환경 조사>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인권 침해의 총구를
학생들에게 겨냥해서는 안 된다. 자기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 정도로 차별받는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마음의 큰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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