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수스조합 결성10주년을 맞아서 작성된 <카피레프트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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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5-02-01 23:19본문
글쓴이 :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1, 잠자는 콘텐츠를 깨워라
콘텐츠가 잠자고 있다. 핸드폰 안에는 내가 찍은 사진, 동영상 등 콘텐츠가 들어있다. 풍경 좋은 곳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핸드폰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다. 별다른 활용 없이 잠만 자고 있던 추억어린 콘텐츠가 어느 날, 삭제 위기에 처한다. 갈수록 쌓여만 가는 콘텐츠에 메모리 용량이 초과되는 위험에 처한다. 그래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사진, 동영상을 하나, 둘씩 지운다. 핸드폰이라도 분실하면 몽땅 사라진다.
아날로그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현상, 인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 장 남았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앨범에 보관하던 시절에 비해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나 피사체를 쉽게 찍을 수 있기에 보관 욕심이 강하지 않다. 비디오 테잎은 ‘복사’라는 과정을 몇 번 거치면 화질이 떨어져 영상 판별이 어려울 정도가 된다. 그러나 디지털은 ‘전송’, ‘다운로드’ 기능으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한다.
그런데 사진, 동영상 등의 콘텐츠는 넘쳐나는데 막상 사용하려면 쉽지 않다. 저작권 때문이다. 저작권자에게 직접 허락을 받거나 게티이미지 뱅크, 셔터스톡 같이 콘텐츠를 유료로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돈을 지불하고 사야 한다. 내가 찍은 돈 받고 팔만한 사진, 동영상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냥 줄 수도 있는데 막상 내가 필요로 할 때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바자회’라는 게 있다. 내겐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품을 내놓고 무상으로 주고 받는 자선행사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흐뭇하다. 쓰임새 없이 집의 공간만을 차지하던 잠자는 물품이 누군가는 돈 주고 사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사진, 동영상 뿐만 아니라 소설, 대본 등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제공했다고 해서 내 콘텐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화질이 저하 되는 일은 절대 없다. 우리는 공간을 초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2. 카피레프트(CopyLeft)의 등장
서울에 거주하는 아이스크림 판매상이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에 눈 내리는 사진이 필요하다. 이 사진을 아이스크림 홍보에 사용하려 한다. 유료사이트에 들어가서 사진을 구매하려 했지만 상품 홍보에 적합한 사진이 없다. 할 수 없이 직접 내려가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라산은 입산이 통제되기도 하고, 도착한 날에 눈이 내리지 않으면 이래저래 낭패다. 이럴 때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구도에 맞춰 사진을 찍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제주도 가는 비행기 요금, 숙박비, 식비 등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런 도움이 비행기 운항 횟수를 줄이고, 화석연료도 절약해서 지구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건 일종의 자연보호, 에너지 절약운동이다. 사진, 동영상 등 콘텐츠를 타인에게 돈을 받지 않고 제공하는 방식을 카피레프트(CopyLeft)라 한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의 영어표현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대개념으로 만들어진 단어다. 음악, 드라마, 영화, 소설,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저작물에 대하여 창작자가 가지는 소유를 ‘저작권’이라 한다. 이에 반해 카피레프트는 ‘소유’보다는 ‘공유’를 주장한다. 카피라이트의 영어단어 라이트(Right)는 오른쪽, 정당한, 옳은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우익의 뜻을 갖고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으면 부모들이 ‘바른 손’으로 밥을 먹으라고 꾸짖었다. 바른 손은 오른손을 말한다.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쓰고 공을 던지면 ‘틀린 행동’이라고 학교 선생님들이 바로 잡겠다고 체벌까지 가했다. 1950년 남북전쟁 기간 중에 좌익, 우익의 학살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레프트(좌)는 그 단어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다.
1984년에 레프트의 깃발을 든 사람이 등장했다. 저작권리인 카피라이트에 반기(反旗)를 든 미국 MIT의 연구원이었던 리처드 스톨먼이다. 그는 “소프트웨어 저작권료를 허용하면 독점화가 되고 이렇게 되면 정보 격차가 벌어지게 됨으로써 빈부격차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소프트웨어를 누구나 사용, 수정, 배포할 수 있는 오픈소스(Open Source)를 주장했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독점하지 않고, 결과물을 활용할 수 있는 ‘카피레프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카피레프트를 카피라이트 저작권을 불법으로 복제하는 것으로 오인하면 안 된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과도한 저작권 체제에 경종을 울리고 싶은 것이다.
필자가 카피레프트 선언 글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할 때 쓰는 www도 팀 버너스리라는 사람이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웹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며 모두의 것이다”라는 신념 아래 팀 버너스리는 www (World Wide Web)의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공공재로 만들었다. 리처드 스톨먼, 팀 버너리스처럼 ‘창작물은 자유롭게 사용돼야 한다’고 실천하는 행위가 카피레프트 운동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천재 과학자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했을 때 기자들이 ‘어떻게 그런 위대한 발견을 했냐’고 질문하자 ‘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탔을 뿐이다’라고 뉴턴이 대답했다. 앞선 세대 과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의 만유인력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했다는 뜻이다. ‘거인의 어깨’는 앞선 세대의 과학자들이다. 만약에 뉴턴이 자신의 이론에 저작 권리를 요구했다면 과학 발전이 지금만큼 가능했을까? 주식투자에 관심이 많고 돈 버는 이재에 밝았던 뉴턴도 자신의 업적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본 것뿐’이라고 겸허히 인정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1910년에 ‘자신의 작품을 무상으로 출판하겠다‘는 유서를 부인 몰래 작성했다. 부인 몰래 작성한 이유는 유서가 없으면 작품의 저작권이 부인에게 상속되기 때문이었다. 톨스토이는 자기가 쓴 글이 다른 문학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내 개인의 힘으로만 만들어 낸 창작물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라고 어깨를 내밀어줬기 때문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뮤지컬, 연극 등으로 공연됐다. ‘무상 공유’의 힘으로 인류문화가 윤택해졌다.
다윈은 1859년에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이 책에는 진화론을 뒷받침해 주는 세계 여러 나라 과학자들의 방대한 증거들이 실려 있다. 그들은 영국에 사는 다윈이 ‘진화론’이라는 책을 출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평생 관찰해 온 연구 실적을 어떤 금전적 보상도 없이 다윈에게 제공했다. 창조론이 득세하던 시절에 용감히 총대를 멘 다윈의 급진적 이론인 진화론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무상 공유 도움으로 ‘종의 기원’은 진화론의 이론과 결합한 실제를 갖췄다.
‘카피레프트’ 단어는 1984년에 생겨났지만 우리의 삶은 원래 카피레프트적이었다. 대대로 제주도 해녀들은 물질해서 잡은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물속에서 경쟁하지 않고 연대함으로써 동료 해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도와준다. 공유 속에서 연대의식이 생겨난다. 연대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단초다. 인류는 ‘독점’이 아닌 ‘공유’를 통해 발전해 왔다.
3.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그런데 ‘사적소유’를 기반으로 500년이 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신이 갖고 있는 콘텐츠를 무상으로 나눠 씁시다’고 제안하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힘들게 만든 콘텐츠를 왜 남한테 공짜로 줘야 하지? 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에 최초로 선 보이는 창작물이 있을까? 성경에도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다. 신의 ‘창조력’을 제외하고 인간은 아이디어 차원의 ‘창의력’만 발휘할 수 있다.
뉴턴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바라본 능력이 당신이 주장할 수 있는 저작권리다. 그것뿐이다. 보호받아야 할 권리는 그게 다다. 개인이 창작해서 만들어 낸 콘텐츠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권리가 터무니없이 과하다. 선조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낸 창작물의 독점 기간이 너무나 길다. 그 기간을 줄여서 창작자들의 콘텐츠 사용 접근성을 쉽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물이 순전히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께 퀴즈를 내겠다. 착한 소녀가 살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 함께 살게 된 계모는 착한 소녀를 하녀처럼 부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법 요정의 도움을 받아 계모는 벌을 받고 주인공은 행복하게 산다는 스토리의 제목은? “정답!” 하면서 손을 번쩍 드는 독일인은 ‘신데렐라’, 한국인은 ‘콩쥐팥쥐’라고 말한다. 세계 각국 여러 인종들의 퀴즈 정답을 발표하겠다. ‘상드리용’(프랑스), ‘한치 이야기’(인도), ‘바실리사 더 뷰티풀’(러시아), '예언송과 난초 공주' (중국), '푸른 새 이야기' (베트남), '모팟사 이야기' (짐바브웨), '거위 소녀' (북미지역), ‘피리잔 이야기’ (페르시아)다. 제목만 그 나라 특성에 따라 다를 뿐 스토리의 기본 전개는 유사하다. 모든 나라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전동화다. 인터넷은커녕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표절에 가까운 이야기가 동시에 탄생했을까?
이야기는 사회적 문화적 존재 속에서 생성된다. 가족 내 갈등, 계급 간의 갈등은 모든 시대의 공통적인 요소다.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량한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는 것도 보편적인 스토리다.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는 산모 사망률이 높던 시절에 계모는 늘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공룡이 멸종된 이후부터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가 한마디, 한마디가 보탠 게 창작이다. 이야기가 탄생했다.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착한 소녀와 계모의 이야기를 1812년에 책으로 엮어낸 이가 그림 형제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브레멘 음악대 등의 지은이는 그림 형제로 알려졌다. 출판된 동화는 독일 전역의 농민,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계층에서 전해 내려오던 민속 설화를 수집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그림 형제는 저작권자가 아니고 수집가일 뿐이다. 그것만 인정받으면 된다. 그림 형제가 만약에 신데렐라, 백설공주가 ‘내 거’라고 주장하는 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나서 “거인도 내가 만들었다”고 떼쓰는 꼴이다.
4. ‘독점’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미키마우스
콘텐츠는 인류공동의 유산이다. 그런데 현재의 저작권리는 뉴턴, 톨스토이의 선행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오늘날, 소설, 드라마, 음악 등을 자본력이 큰 기업에서 제작 후 판매, 유통과정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과도한 지적재산권은 창작자의 의지를 꺾고 창작을 가로막는다.
저작권 보호 기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은 대형 콘텐츠 기업이 기존 작품으로부터 얻는 수익을 오래 더 유지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이를 "미키 마우스 보호법"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귀여운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 만료를 연장하기 위해 디즈니가 미국 정계에 로비를 해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사악스럽게 통과시켰다. 저작권 기간이 끝나면 콘텐츠는 공공재가 되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대형 기업들이 이를 막고 있다. 저작권 기간 연장은 창작자와 그 후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저작권 수익은 창작자보다는 이를 소유한 기업에 집중된다. 저작권 기간 연장은 인류의 문화 발전에 걸림돌이다.
인류 공동의 자산인 콘텐츠는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창작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콘텐츠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카피레프트 운동이다. 거창한 이념도 아닌 ‘나눌수록 커진다’는 소박한 믿음이다.
5. AI 유령과 카피레프트 선언(약속)
AI라는 인공지능 유령이 나타났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적소유 폐지를 주장한 칼 맑스의 ‘공산당 선언’만큼 AI 출연은 저작권 강화를 꾀하는 대기업을 벌벌 떨게 만들 것이다. AI가 생성해내는 콘텐츠가 모두의 것이 된다면 그들의 독점적 소유 형태가 깨진다. 그러면 자유로운 창작기반이 조성된다. AI가 저작권의 지축을 뒤흔들 것이다. 천지개벽 수준이다. AI는 누구나 창작을 쉽게 해준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명령어’ 만으로 콘텐츠가 뚝딱 생겨난다. 굳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모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주는 게 AI다. 인류 공동의 노동과 지적 축적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 즉 ‘거인’이 있기 때문에 AI로 제작이 가능한 것이다.
AI는 카피레프트와 일맥상통한다. 세상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던 시절, 각국의 책들은 이 길을 따라서 세계 최초의 도서관 셀수스에 모였다. ‘지식의 샘‘ 되고자 했던 셀수스처럼 ‘콘텐츠 무상 공유 카피레프트 운동’을 실천하는 「셀수스협동조합(이하 ‘셀수스조합’)」이 2015년에 결성됐다. 그 동안 셀수스조합 홈페이지(celsus.org)에서 저작권이 해결된 동영상, 사진, 대본, 소설 등을 누구나 무상으로 다운로드해서 상업적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무상으로 제공한 희곡 ‘노란 잠수함’을 제주대학교 연극부가 상업적인 공연으로 2019년 무대에 올렸다. 드론으로 촬영된 한국의 지형 동영상들은 지리 교사가 학습 자료에 활용하고 있다. 1971년에 촬영된 오래된 한국 사회 사진을 활용하여 경향신문에 칼럼을 쓴 사람도 있다. 뿐만아니라 세계 최초의 카피레프트 책인 ‘카피레프트 우주선을 쏘아올린다’와 ‘카피레프트 톨스토이 어깨에 올라 타다’를 셀수스조합에서 발간했다. 유명 소설가 안재성, 유니게, 임성용, 이주성 등이 무상으로 기부한 단편소설 덕분에 2차적 저작권을 무상으로 풀었다. 2차적 저작물인 뮤지컬,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을 저작권료 지불 없이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4명의 소설가들이 창작의 씨앗을 무상으로 뿌려준 것이다.
1984년 리처드 스톨먼이 시작한 ‘카피레프트 운동’이 이제 40년 역사를 넘어섰다. ‘리처드 스톨먼’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셀수스조합이 카피레프트 선언을 한다. 어찌 보면 약속이다. 독점하려고 스트레스 받으며 경쟁하지 말고 ‘무상 공유로 모두가 즐겁게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하는 약속이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약속 하나! 콘텐츠는 공유화되어야 한다. 창작물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독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공의 자원이 되어야 한다.
약속 둘! 과도한 저작권리는 해체되어야 한다. 저작권은 창작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대중의 접근을 막는 도구로 전락했다. 제도의 개선을 통해 콘텐츠의 자유로운 순환을 보장받아야 한다.
약속 셋! 창작자의 이름은 독점의 이름이 아니라 공유의 이름으로 빛나야 한다.
AI가 만들어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진, 동영상, 글 등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소유관계를 요구한다. ‘독점’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결국 공동체적 소유 구조로 가야 한다. 이제 ‘독점’은 낡은 형태의 소유다. 낡은 세상은 언젠가는 무너지고 사라진다. 그 소멸을 카피레프트가 해낼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광야를 불사른다. 지금은 강력한 저작권법에 포위당해 카피레프트의 불씨가 미약하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 첨부된 사진은 위의 원고 내용에 맞춰 AI가 만들어낸 이미지임
http://www.lpdins.net/main/sub.html?boardID=www26&num=127&Mode=view
1, 잠자는 콘텐츠를 깨워라
콘텐츠가 잠자고 있다. 핸드폰 안에는 내가 찍은 사진, 동영상 등 콘텐츠가 들어있다. 풍경 좋은 곳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핸드폰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다. 별다른 활용 없이 잠만 자고 있던 추억어린 콘텐츠가 어느 날, 삭제 위기에 처한다. 갈수록 쌓여만 가는 콘텐츠에 메모리 용량이 초과되는 위험에 처한다. 그래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사진, 동영상을 하나, 둘씩 지운다. 핸드폰이라도 분실하면 몽땅 사라진다.
아날로그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현상, 인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 장 남았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앨범에 보관하던 시절에 비해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나 피사체를 쉽게 찍을 수 있기에 보관 욕심이 강하지 않다. 비디오 테잎은 ‘복사’라는 과정을 몇 번 거치면 화질이 떨어져 영상 판별이 어려울 정도가 된다. 그러나 디지털은 ‘전송’, ‘다운로드’ 기능으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한다.
그런데 사진, 동영상 등의 콘텐츠는 넘쳐나는데 막상 사용하려면 쉽지 않다. 저작권 때문이다. 저작권자에게 직접 허락을 받거나 게티이미지 뱅크, 셔터스톡 같이 콘텐츠를 유료로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돈을 지불하고 사야 한다. 내가 찍은 돈 받고 팔만한 사진, 동영상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냥 줄 수도 있는데 막상 내가 필요로 할 때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바자회’라는 게 있다. 내겐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품을 내놓고 무상으로 주고 받는 자선행사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흐뭇하다. 쓰임새 없이 집의 공간만을 차지하던 잠자는 물품이 누군가는 돈 주고 사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사진, 동영상 뿐만 아니라 소설, 대본 등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제공했다고 해서 내 콘텐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화질이 저하 되는 일은 절대 없다. 우리는 공간을 초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2. 카피레프트(CopyLeft)의 등장
서울에 거주하는 아이스크림 판매상이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에 눈 내리는 사진이 필요하다. 이 사진을 아이스크림 홍보에 사용하려 한다. 유료사이트에 들어가서 사진을 구매하려 했지만 상품 홍보에 적합한 사진이 없다. 할 수 없이 직접 내려가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라산은 입산이 통제되기도 하고, 도착한 날에 눈이 내리지 않으면 이래저래 낭패다. 이럴 때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구도에 맞춰 사진을 찍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제주도 가는 비행기 요금, 숙박비, 식비 등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런 도움이 비행기 운항 횟수를 줄이고, 화석연료도 절약해서 지구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건 일종의 자연보호, 에너지 절약운동이다. 사진, 동영상 등 콘텐츠를 타인에게 돈을 받지 않고 제공하는 방식을 카피레프트(CopyLeft)라 한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의 영어표현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대개념으로 만들어진 단어다. 음악, 드라마, 영화, 소설,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저작물에 대하여 창작자가 가지는 소유를 ‘저작권’이라 한다. 이에 반해 카피레프트는 ‘소유’보다는 ‘공유’를 주장한다. 카피라이트의 영어단어 라이트(Right)는 오른쪽, 정당한, 옳은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우익의 뜻을 갖고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으면 부모들이 ‘바른 손’으로 밥을 먹으라고 꾸짖었다. 바른 손은 오른손을 말한다.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쓰고 공을 던지면 ‘틀린 행동’이라고 학교 선생님들이 바로 잡겠다고 체벌까지 가했다. 1950년 남북전쟁 기간 중에 좌익, 우익의 학살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레프트(좌)는 그 단어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다.
1984년에 레프트의 깃발을 든 사람이 등장했다. 저작권리인 카피라이트에 반기(反旗)를 든 미국 MIT의 연구원이었던 리처드 스톨먼이다. 그는 “소프트웨어 저작권료를 허용하면 독점화가 되고 이렇게 되면 정보 격차가 벌어지게 됨으로써 빈부격차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소프트웨어를 누구나 사용, 수정, 배포할 수 있는 오픈소스(Open Source)를 주장했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독점하지 않고, 결과물을 활용할 수 있는 ‘카피레프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카피레프트를 카피라이트 저작권을 불법으로 복제하는 것으로 오인하면 안 된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과도한 저작권 체제에 경종을 울리고 싶은 것이다.
필자가 카피레프트 선언 글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할 때 쓰는 www도 팀 버너스리라는 사람이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웹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며 모두의 것이다”라는 신념 아래 팀 버너스리는 www (World Wide Web)의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공공재로 만들었다. 리처드 스톨먼, 팀 버너리스처럼 ‘창작물은 자유롭게 사용돼야 한다’고 실천하는 행위가 카피레프트 운동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천재 과학자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했을 때 기자들이 ‘어떻게 그런 위대한 발견을 했냐’고 질문하자 ‘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탔을 뿐이다’라고 뉴턴이 대답했다. 앞선 세대 과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의 만유인력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했다는 뜻이다. ‘거인의 어깨’는 앞선 세대의 과학자들이다. 만약에 뉴턴이 자신의 이론에 저작 권리를 요구했다면 과학 발전이 지금만큼 가능했을까? 주식투자에 관심이 많고 돈 버는 이재에 밝았던 뉴턴도 자신의 업적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본 것뿐’이라고 겸허히 인정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1910년에 ‘자신의 작품을 무상으로 출판하겠다‘는 유서를 부인 몰래 작성했다. 부인 몰래 작성한 이유는 유서가 없으면 작품의 저작권이 부인에게 상속되기 때문이었다. 톨스토이는 자기가 쓴 글이 다른 문학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내 개인의 힘으로만 만들어 낸 창작물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라고 어깨를 내밀어줬기 때문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뮤지컬, 연극 등으로 공연됐다. ‘무상 공유’의 힘으로 인류문화가 윤택해졌다.
다윈은 1859년에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이 책에는 진화론을 뒷받침해 주는 세계 여러 나라 과학자들의 방대한 증거들이 실려 있다. 그들은 영국에 사는 다윈이 ‘진화론’이라는 책을 출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평생 관찰해 온 연구 실적을 어떤 금전적 보상도 없이 다윈에게 제공했다. 창조론이 득세하던 시절에 용감히 총대를 멘 다윈의 급진적 이론인 진화론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무상 공유 도움으로 ‘종의 기원’은 진화론의 이론과 결합한 실제를 갖췄다.
‘카피레프트’ 단어는 1984년에 생겨났지만 우리의 삶은 원래 카피레프트적이었다. 대대로 제주도 해녀들은 물질해서 잡은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물속에서 경쟁하지 않고 연대함으로써 동료 해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도와준다. 공유 속에서 연대의식이 생겨난다. 연대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단초다. 인류는 ‘독점’이 아닌 ‘공유’를 통해 발전해 왔다.
3.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그런데 ‘사적소유’를 기반으로 500년이 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신이 갖고 있는 콘텐츠를 무상으로 나눠 씁시다’고 제안하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힘들게 만든 콘텐츠를 왜 남한테 공짜로 줘야 하지? 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에 최초로 선 보이는 창작물이 있을까? 성경에도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다. 신의 ‘창조력’을 제외하고 인간은 아이디어 차원의 ‘창의력’만 발휘할 수 있다.
뉴턴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바라본 능력이 당신이 주장할 수 있는 저작권리다. 그것뿐이다. 보호받아야 할 권리는 그게 다다. 개인이 창작해서 만들어 낸 콘텐츠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권리가 터무니없이 과하다. 선조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낸 창작물의 독점 기간이 너무나 길다. 그 기간을 줄여서 창작자들의 콘텐츠 사용 접근성을 쉽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물이 순전히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께 퀴즈를 내겠다. 착한 소녀가 살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 함께 살게 된 계모는 착한 소녀를 하녀처럼 부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법 요정의 도움을 받아 계모는 벌을 받고 주인공은 행복하게 산다는 스토리의 제목은? “정답!” 하면서 손을 번쩍 드는 독일인은 ‘신데렐라’, 한국인은 ‘콩쥐팥쥐’라고 말한다. 세계 각국 여러 인종들의 퀴즈 정답을 발표하겠다. ‘상드리용’(프랑스), ‘한치 이야기’(인도), ‘바실리사 더 뷰티풀’(러시아), '예언송과 난초 공주' (중국), '푸른 새 이야기' (베트남), '모팟사 이야기' (짐바브웨), '거위 소녀' (북미지역), ‘피리잔 이야기’ (페르시아)다. 제목만 그 나라 특성에 따라 다를 뿐 스토리의 기본 전개는 유사하다. 모든 나라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전동화다. 인터넷은커녕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표절에 가까운 이야기가 동시에 탄생했을까?
이야기는 사회적 문화적 존재 속에서 생성된다. 가족 내 갈등, 계급 간의 갈등은 모든 시대의 공통적인 요소다.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량한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는 것도 보편적인 스토리다.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는 산모 사망률이 높던 시절에 계모는 늘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공룡이 멸종된 이후부터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가 한마디, 한마디가 보탠 게 창작이다. 이야기가 탄생했다.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착한 소녀와 계모의 이야기를 1812년에 책으로 엮어낸 이가 그림 형제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브레멘 음악대 등의 지은이는 그림 형제로 알려졌다. 출판된 동화는 독일 전역의 농민,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계층에서 전해 내려오던 민속 설화를 수집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그림 형제는 저작권자가 아니고 수집가일 뿐이다. 그것만 인정받으면 된다. 그림 형제가 만약에 신데렐라, 백설공주가 ‘내 거’라고 주장하는 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나서 “거인도 내가 만들었다”고 떼쓰는 꼴이다.
4. ‘독점’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미키마우스
콘텐츠는 인류공동의 유산이다. 그런데 현재의 저작권리는 뉴턴, 톨스토이의 선행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오늘날, 소설, 드라마, 음악 등을 자본력이 큰 기업에서 제작 후 판매, 유통과정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과도한 지적재산권은 창작자의 의지를 꺾고 창작을 가로막는다.
저작권 보호 기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은 대형 콘텐츠 기업이 기존 작품으로부터 얻는 수익을 오래 더 유지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이를 "미키 마우스 보호법"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귀여운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 만료를 연장하기 위해 디즈니가 미국 정계에 로비를 해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사악스럽게 통과시켰다. 저작권 기간이 끝나면 콘텐츠는 공공재가 되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대형 기업들이 이를 막고 있다. 저작권 기간 연장은 창작자와 그 후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저작권 수익은 창작자보다는 이를 소유한 기업에 집중된다. 저작권 기간 연장은 인류의 문화 발전에 걸림돌이다.
인류 공동의 자산인 콘텐츠는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창작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콘텐츠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카피레프트 운동이다. 거창한 이념도 아닌 ‘나눌수록 커진다’는 소박한 믿음이다.
5. AI 유령과 카피레프트 선언(약속)
AI라는 인공지능 유령이 나타났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적소유 폐지를 주장한 칼 맑스의 ‘공산당 선언’만큼 AI 출연은 저작권 강화를 꾀하는 대기업을 벌벌 떨게 만들 것이다. AI가 생성해내는 콘텐츠가 모두의 것이 된다면 그들의 독점적 소유 형태가 깨진다. 그러면 자유로운 창작기반이 조성된다. AI가 저작권의 지축을 뒤흔들 것이다. 천지개벽 수준이다. AI는 누구나 창작을 쉽게 해준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명령어’ 만으로 콘텐츠가 뚝딱 생겨난다. 굳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모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주는 게 AI다. 인류 공동의 노동과 지적 축적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 즉 ‘거인’이 있기 때문에 AI로 제작이 가능한 것이다.
AI는 카피레프트와 일맥상통한다. 세상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던 시절, 각국의 책들은 이 길을 따라서 세계 최초의 도서관 셀수스에 모였다. ‘지식의 샘‘ 되고자 했던 셀수스처럼 ‘콘텐츠 무상 공유 카피레프트 운동’을 실천하는 「셀수스협동조합(이하 ‘셀수스조합’)」이 2015년에 결성됐다. 그 동안 셀수스조합 홈페이지(celsus.org)에서 저작권이 해결된 동영상, 사진, 대본, 소설 등을 누구나 무상으로 다운로드해서 상업적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무상으로 제공한 희곡 ‘노란 잠수함’을 제주대학교 연극부가 상업적인 공연으로 2019년 무대에 올렸다. 드론으로 촬영된 한국의 지형 동영상들은 지리 교사가 학습 자료에 활용하고 있다. 1971년에 촬영된 오래된 한국 사회 사진을 활용하여 경향신문에 칼럼을 쓴 사람도 있다. 뿐만아니라 세계 최초의 카피레프트 책인 ‘카피레프트 우주선을 쏘아올린다’와 ‘카피레프트 톨스토이 어깨에 올라 타다’를 셀수스조합에서 발간했다. 유명 소설가 안재성, 유니게, 임성용, 이주성 등이 무상으로 기부한 단편소설 덕분에 2차적 저작권을 무상으로 풀었다. 2차적 저작물인 뮤지컬,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을 저작권료 지불 없이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4명의 소설가들이 창작의 씨앗을 무상으로 뿌려준 것이다.
1984년 리처드 스톨먼이 시작한 ‘카피레프트 운동’이 이제 40년 역사를 넘어섰다. ‘리처드 스톨먼’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셀수스조합이 카피레프트 선언을 한다. 어찌 보면 약속이다. 독점하려고 스트레스 받으며 경쟁하지 말고 ‘무상 공유로 모두가 즐겁게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하는 약속이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약속 하나! 콘텐츠는 공유화되어야 한다. 창작물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독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공의 자원이 되어야 한다.
약속 둘! 과도한 저작권리는 해체되어야 한다. 저작권은 창작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대중의 접근을 막는 도구로 전락했다. 제도의 개선을 통해 콘텐츠의 자유로운 순환을 보장받아야 한다.
약속 셋! 창작자의 이름은 독점의 이름이 아니라 공유의 이름으로 빛나야 한다.
AI가 만들어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진, 동영상, 글 등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소유관계를 요구한다. ‘독점’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결국 공동체적 소유 구조로 가야 한다. 이제 ‘독점’은 낡은 형태의 소유다. 낡은 세상은 언젠가는 무너지고 사라진다. 그 소멸을 카피레프트가 해낼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광야를 불사른다. 지금은 강력한 저작권법에 포위당해 카피레프트의 불씨가 미약하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 첨부된 사진은 위의 원고 내용에 맞춰 AI가 만들어낸 이미지임
http://www.lpdins.net/main/sub.html?boardID=www26&num=127&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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