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수스조합원 고천성 선생 이야기가 실린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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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회 작성일 25-08-27 21:29본문
<부천뉴스> 제호를 쓰고, 영화, 책, 방송 등 다양한 글씨를 쓰는 캘리그라피스트 고천성 작가. 여러 이유로 살이 홀쭉해지고 잘 생겨진(?) 그를 만났다. 1969년 부천에서 태어난 고천성 작가.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부천에 터를 잡은 뼈대 있는 토박이다.
부천북초등학교, 남중학교를 거쳐 시온고등학교를 졸업한 그의 학창 시절은 예사롭지 않았다. 시온고 진학은 뺑뺑이가 아니었는데도 이뤄졌던 특별한 배경이 있다.
“전태일 평전이 인생을 망가뜨렸네(?)”
당시 중학교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특정 고등학교로 보내면 인센티브를 받는 관행이 있었다는 것. 고 작가는 중학교 때 미래에 내신 비중이 커진다며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시온고에 가게 됐다.
고 작가는 이어서 상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선배가 건넨 ‘전태일 평전’ 한 권은 그의 삶을 크게 흔들었다. "전태일 평전이 인생을 망가뜨렸네"라는 농담 섞인 말을 할 정도로, 그의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서울권 대학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 끝에 상지대에 간 그는 대학에서도 남다른 이력을 쌓았다. 달리기가 느려 집회에 직접 나가는 대신, 현수막을 만들고 걸개 그림과 만화를 그리는 역할을 도맡았다. 밤샘 작업으로 학업을 등한시하게 되었지만, 그 경험들은 훗날 그의 예술적 감각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데 큰 자산이 됐다.
격동의 사회 경험 : 기자에서 자동차 영업까지
고 작가의 사회생활은 더욱 예측 불가능한 드라마와 같았다. 1994년, 첫 직장은 강원도 원주의 '강원 타임즈'라는 지역 신문사였다. 편집, 만화, 취재를 모두 도맡는 '풀타임 기자'였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예기치 않은 이유로 퇴사하게 된다. 바로 사장이 범죄로 구속되며 신문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후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1997년 무렵 지방선거가 있던 시기에는 선배를 따라 지방의 또 다른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대형 언론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을 닫았다. 당시 마지막으로 30 ~ 40만 원씩 나눠 받고 헤어졌다고 그는 회고했다. 우연히 강원도 횡성의 한 인쇄소를 인수할 기회도 있었지만, 건강이 안 좋아 결국 포기하고 1998년경 부천으로 돌아오게 된다.
부천에 돌아온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직업을 경험했다. 십여 개의 직장을 거쳤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다. "잡다한 건 다 했다."라며, 당구장을 운영해 월 4 ~ 500만 원을 벌기도 했지만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한 건지 정리를 하게 되었다. 자동차 영업을 할 때도 영업에 집중하지 못해 고전하기도 했다. 그의 다채로운 경험은 단순한 이력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깊이를 더해줬다.
제2의 인생 : 캘리그라피와의 운명적 만남
격변의 삶을 살던 고 작가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12년 무렵이었다. 우연히 캘리그라피와 인연을 맺게 된다. 영업을 하며 고객들에게 직접 쓴 부채를 선물했는데, 한 손님이 "캘리그라피를 해보라."라고 권유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캘리그라피라는 단어조차 몰랐지만,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매료됐다.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쓰고 디자인했던 경험이 캘리그라피와 자연스럽게 연결됨을 느꼈다. 캘리그라피에는 별다른 전공이나 학과가 없다는 점 또한 그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기회였다. 오랜 방황 끝에 목표나 지향을 찾은 것이다.
최근 부천의 작업실을 정리하고 이사하며 잠시 부천을 떠났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 사람들이 그의 글씨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길거리에 붙여놓은 글씨를 보고 연락이 오는 등 신기한 경험도 했다. 현재는 인천의 배다리에서 작업을 하며 수강생들을 가르친다. 물론 부천에서도 수업을 진행한다. 계속해서 캘리그라피스트로서 여전한 활동을 한다.
고천성 작가는 그의 삶의 궤적을 붓끝에 담아내며, 단순한 글씨를 넘어 삶과 사람, 생명의 메시지와 부천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부천이라는 든든한 뿌리 위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 온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되길 빈다.
출처 : 부천뉴스(https://www.bucheonnews.co.kr)
https://www.buche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7&fbclid=IwY2xjawMb2G1leHRuA2FlbQIxMQABHsh2RuNhB8PLi3ZwCa6k1aLaXjwB7uGYgp5U5pzJyKfB4_5-5B-hgGnAPekz_aem_PUJKZYo3lI5rdQi6g-mC0A
부천북초등학교, 남중학교를 거쳐 시온고등학교를 졸업한 그의 학창 시절은 예사롭지 않았다. 시온고 진학은 뺑뺑이가 아니었는데도 이뤄졌던 특별한 배경이 있다.
“전태일 평전이 인생을 망가뜨렸네(?)”
당시 중학교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특정 고등학교로 보내면 인센티브를 받는 관행이 있었다는 것. 고 작가는 중학교 때 미래에 내신 비중이 커진다며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시온고에 가게 됐다.
고 작가는 이어서 상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선배가 건넨 ‘전태일 평전’ 한 권은 그의 삶을 크게 흔들었다. "전태일 평전이 인생을 망가뜨렸네"라는 농담 섞인 말을 할 정도로, 그의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서울권 대학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 끝에 상지대에 간 그는 대학에서도 남다른 이력을 쌓았다. 달리기가 느려 집회에 직접 나가는 대신, 현수막을 만들고 걸개 그림과 만화를 그리는 역할을 도맡았다. 밤샘 작업으로 학업을 등한시하게 되었지만, 그 경험들은 훗날 그의 예술적 감각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데 큰 자산이 됐다.
격동의 사회 경험 : 기자에서 자동차 영업까지
고 작가의 사회생활은 더욱 예측 불가능한 드라마와 같았다. 1994년, 첫 직장은 강원도 원주의 '강원 타임즈'라는 지역 신문사였다. 편집, 만화, 취재를 모두 도맡는 '풀타임 기자'였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예기치 않은 이유로 퇴사하게 된다. 바로 사장이 범죄로 구속되며 신문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후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1997년 무렵 지방선거가 있던 시기에는 선배를 따라 지방의 또 다른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대형 언론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을 닫았다. 당시 마지막으로 30 ~ 40만 원씩 나눠 받고 헤어졌다고 그는 회고했다. 우연히 강원도 횡성의 한 인쇄소를 인수할 기회도 있었지만, 건강이 안 좋아 결국 포기하고 1998년경 부천으로 돌아오게 된다.
부천에 돌아온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직업을 경험했다. 십여 개의 직장을 거쳤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다. "잡다한 건 다 했다."라며, 당구장을 운영해 월 4 ~ 500만 원을 벌기도 했지만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한 건지 정리를 하게 되었다. 자동차 영업을 할 때도 영업에 집중하지 못해 고전하기도 했다. 그의 다채로운 경험은 단순한 이력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깊이를 더해줬다.
제2의 인생 : 캘리그라피와의 운명적 만남
격변의 삶을 살던 고 작가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12년 무렵이었다. 우연히 캘리그라피와 인연을 맺게 된다. 영업을 하며 고객들에게 직접 쓴 부채를 선물했는데, 한 손님이 "캘리그라피를 해보라."라고 권유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캘리그라피라는 단어조차 몰랐지만,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매료됐다.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쓰고 디자인했던 경험이 캘리그라피와 자연스럽게 연결됨을 느꼈다. 캘리그라피에는 별다른 전공이나 학과가 없다는 점 또한 그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기회였다. 오랜 방황 끝에 목표나 지향을 찾은 것이다.
최근 부천의 작업실을 정리하고 이사하며 잠시 부천을 떠났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 사람들이 그의 글씨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길거리에 붙여놓은 글씨를 보고 연락이 오는 등 신기한 경험도 했다. 현재는 인천의 배다리에서 작업을 하며 수강생들을 가르친다. 물론 부천에서도 수업을 진행한다. 계속해서 캘리그라피스트로서 여전한 활동을 한다.
고천성 작가는 그의 삶의 궤적을 붓끝에 담아내며, 단순한 글씨를 넘어 삶과 사람, 생명의 메시지와 부천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부천이라는 든든한 뿌리 위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 온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되길 빈다.
출처 : 부천뉴스(https://www.bucheonnews.co.kr)
https://www.buche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7&fbclid=IwY2xjawMb2G1leHRuA2FlbQIxMQABHsh2RuNhB8PLi3ZwCa6k1aLaXjwB7uGYgp5U5pzJyKfB4_5-5B-hgGnAPekz_aem_PUJKZYo3lI5rdQi6g-mC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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