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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 경향신문 연재 <반세기 기록의 기억> (17회) 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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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41회 작성일 22-04-2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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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치영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서울 종로 4가를 사이에 두고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와 마주 보고 있는 세운상가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세운상가 터는 일제가 연합군의 폭격에 대비해 방화선으로 조성한 공터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란민들의 판잣집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 지역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불도저 시장이라 불린 김현옥 서울시장이 한국 최초의 도심 재개발사업을 세웠고 1966년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상가 건설에 착수한다. ‘세운’이란 이름은 “세상의 기운을 모은다”라는 뜻으로 김현옥이 작명하였다.

착공 2년 만인 1968년 탄생한 세운상가는 현대·청계·대림·삼풍·신성·진양 등의 상가아파트와 풍전호텔로 구성된 복합건물군이었다. 1~4층은 상가, 5층 이상은 아파트로 하였고, 3층에는 보행자만을 위한 공중가로를 만들어 전체 건물이 연결되도록 계획하였다. 김수근은 원래 건물마다 공공시설을 배치하고, 학교와 공중정원이 있는 이상적인 입체도시를 계획하였으나, 경제논리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도 1971년의 사진을 보면, 현대식 건물이 주변 건물을 제압하고 우뚝 서 있으며,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세운상가는 분양 초기 주거시설로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강남 개발 등으로 서서히 인기가 줄었다. 최고의 종합상가로 각광받던 상업시설도 명동 일대에 대형 백화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더해 전자제품과 음향기기 등으로 특화되어 있던 업종이 도심 부적격 업종으로 지정되고 용산전자상가로 이전되면서 세운상가의 상권은 급격하게 몰락하였다. 그래서 1980~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세운상가를 성인잡지와 비디오, 불법 복제 음반인 ‘빽판’이 유통되던 곳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세운상가를 모두 허물어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를 만들고, 주변을 고밀도로 개발하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에 따라 북단의 현대상가아파트가 철거되었는데, 2021년 찍은 사진의 앞쪽 공터가 그 자리이다. 그러나 전면철거계획은 보상 문제, 종묘 경관 보호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중단되고 말았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429030001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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