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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 경향신문 연재 <반세기 기록의 기억> (10회) 한국은행 앞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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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4회 작성일 22-03-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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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원)

일제 강점기 경성 시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조선은행이었다. 1912년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조선은행 건물은 지배자 일본 제국주의의 힘과 근대화의 상징이었고 조선 상권의 중심으로 한국 최초의 은행이었다.
해방 후 조선은행은 한국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여전히 명동과 남대문시장 상권을 아우르는 번화가의 보스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가의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으로 일반인 상대 업무는 하지 않는 한국은행 건물을 바라보면서 ‘저 안에 얼마나 많은 돈이 있을까?’ 셈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6·25전쟁 발발 이틀 후,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 중이던 금괴는 국군 트럭에 실려 빠져나갔다가 서울 수복 이후 한국은행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괴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분수대 지하에 금고가 있는데 거기에 금괴를 보관한다는…. 소문의 주인공 한국은행은 자체 경비를 위해 권총에 기관총까지 겸비하고 있다는데 지금까지 1965년에 딱 한번 털렸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박정희 정권은 북한을 ‘북괴(북한괴뢰)’로 칭했는데 공포의 대상 ‘북괴’와 선망의 대상 한국은행 ‘금괴’ 그리고 동양방송에서 방송된 일본 만화영화 <요괴인간>이 공존했던 괴기스러운 1971년 사진 속의 분수대는 로터리 역할이 컸다. 원활한 차량흐름을 위해 교통순경처럼 서 있는 소박한 형태의 분수대는 1978년에 입체적으로 변신한다.
대대적으로 모양이 달라진 이유는 ‘선진조국 창달’이라는 선전용 랜드마크로 한국은행 분수대가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에 12m 높이에 8층 6각의 분수탑과 15점의 조각상 장식으로 재탄생한 분수대는 현재까지 반세기 세월의 녹이 슬어있는데 이 분수대를 철거하고 이탈리아 트레비 분수광장처럼 한국은행 사거리를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사업계획이 있었다. 연간 1000만 관광객이 방문하여 분수대에 동전을 넣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트레비 분수대는 1762년에 처음으로 물줄기를 뿜어냈다. 그 물줄기에 이탈리아 역사가 도도히 흐르고 있는 셈이다.
돈이 된다 싶으면 노후화로 낙인찍어 역사적 가치를 깨부수는 데 망설임도 없는 자본의 논리에 위태로운 한국은행 분수대에 동전을 넣고 소원을 빌어야겠다. “제발 50년도 안 된 이 분수대가 사라지지 않게 해주세요.”


* 이 칼럼에 게재된 신문의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311030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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