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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의 경향신문 연재<반세기,기록의 기억> (6회) 수원 축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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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65회 작성일 22-02-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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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1호선 화서역 5·6번 출구로 나가면 서호꽂뫼공원이 펼쳐져 있다. 공원을 가로질러 서남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아담한 호수 하나가 나온다. 이 호수가 서호다.

서호의 공식 명칭은 축만제(祝萬堤)인데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이다. 자연 호수처럼 보이는 축만제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사실 정조 23년인 1799년에 축조된 인공 저수지이다. 당시 정조는 수원화성을 짓고 나서 화성의 동서남북에 네 개의 저수지를 축조하였는데, 북쪽이 만석거(萬石渠), 남쪽이 만년제(萬年堤), 그리고 서쪽이 이 축만제다. 동쪽 저수지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만년제는 현재 수풀로 뒤덮여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200호인 축만제는 애초부터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관개시설로 만들어진 것이다. <정조실록>을 보면 “관개하는 이익이 크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 못을 파면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아 앞 들판에서 수확한 것이 이미 1000곡이 되었다”고 쓰여 있다.

축만제는 농업을 진흥하여 백성을 구제하고 화성을 자급자족 가능한 도시로 만들려고 하는 정조의 계획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당시 농사법이 씨를 직접 뿌리던 ‘직파법’에서 모판에 모를 키워서 옮기는 ‘이앙법’으로 변화되면서 물이 많이 필요하게 된 것도 저수지를 만든 배경으로 볼 수 있다.

50년이 흘러 축만제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진을 보면 표석에 울타리가 쳐졌고 나무가 울창해진 것 말고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2021년의 사진 왼쪽에 나무가 울창하게 보이는 곳은 1996년에 생긴 인공섬이다. 1996년 서호공원을 조성할 때 나온 준설토를 호수 한가운데에 쌓고 나무를 심으니 1만2000㎡ 면적의 섬이 생겼다. 하지만 인간의 손이 닿지 않고 십수년의 세월이 흐르자 오리, 기러기 등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겨울 철새 민물가마우지의 도래지가 되었다. 2018년 수원시가 실태조사를 해보니 섬 안에 15종의 나무와 32종의 지피류가 자라고 있고 가마우지 둥지가 1700여개로 총 8000마리가 넘는 가마우지가 사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인간은 생활의 요구와 편의에 따라 자연을 개조해 왔고 많은 경우 그것을 파괴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간섭이 사라지면 자연은 놀랄 만한 복원력으로 다시 자신의 길을 간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빠진 지금, 자연의 힘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이 난국의 시대를 타개할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신문의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21103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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