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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이 제공한 사진으로 쓰여진 법보신문 칼럼 <경천사지십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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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5-04-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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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문화유산의 과거와 현재를 동일한 위치에서 촬영한 사진을 비교하는 칼럼의 오늘 주인공인 경천사지십층석탑(이하 석탑)은 같은 장소에서 찍히지 않았다. 1971년 사진은 석탑 옆으로 경복궁 근정전이 있고, 뒤로는 인왕산이 자리하고 있다. 2025년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내부에 석탑이 전시된 모습을 담고 있다.

석탑이 처음 세워진 곳은 경복궁이 아니라 북한 개성에 위치한 경천사(敬天寺)였다. 고려 후기 왕실의 추모제가 열릴 정도로 엄청난 위세를 과시했던 이 사찰에 13.5m 높이의 석탑이 1348년에 건립되었다. 십층 탑의 ‘십(十)’이라는 숫자는 불교 수행 단계에서 완전한 깨달음인 열반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불탑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이 석탑은 연마하기 쉬운 대리석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단단하지 않은 외벽에 석가모니부처님, 용(龍), 연꽃 등의 문양을 세밀하게 새길 수 있었다.

불교 사상과 미술이 집약된 이 경이로운 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07년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지만, 조선인들의 지속적인 반환 요구로 1918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해체된 상태로 경복궁 회랑에 방치된 석탑은 1960년부터 경복궁에서 야외에 전시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눈, 비, 바람에 마모되는 대리석의 약점이 드러나자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실내로 이전됐다.
 
일각에서는 석탑의 실내 전시는 자연스럽지 않고 ‘인공적(人工的)’이라고 지적했다. 어쩌면 원래 있었던 자리인 경천사 법당 옆에 서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석탑의 조각과 문양이 급속한 훼손을 겪게 된다. 개미가 흙을 쌓아 집을 짓고 인간이 탑을 만드는 인공적인 행위도 자연의 일부다. 박물관의 인공조명과 천장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의 조화 덕분에 후손들은 석탑의 정교한 조각을 생생하게 감상하고 있다.

‘고려왕실의 불교장려’ ‘고려와 원나라(몽골) 교류’ ‘일제의 약탈과 반환’ ‘야외전시’ 그리고 ‘문화재 보존기술의 발달’ 등 수많은 인연(因緣)이 얽히고설키며 석탑은 오랜 세월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것도 영원한 자리가 없으며,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말씀하셨다. 석탑에 새겨진 조각을 보면서 대리석의 재질이 부드럽다는 것만 알아도 관람객과 석탑이 맺은 인연은 충분하지 않을까?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zbdebu51@naver.com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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