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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이 제공한 무상공유 사진으로 쓰여진 법보신문 칼럼 <법주사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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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5-02-0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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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 교수)


법주사(法住寺) 입구인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에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이라는 소나무가 있다.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가던 가마가 이 나무 아래를 지났는데, 가지가 처져 있어 가마가 걸리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무사히 지나가도록 도왔다고 한다. 이에 세조가 이 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하여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이품은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한다.

정이품송은 이러한 전설뿐만 아니라, 15m에 달하는 큰 키와 우산을 펼친 듯한 아름다운 모양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 원래 소나무는 햇빛을 많이 요구하는 양지식물로, 촘촘하게 자라면 햇빛을 못 받는 아랫부분의 가지가 말라 죽는다. 정이품송이 가지를 넓게 뻗은 것은 훤한 벌판에 혼자 서 있기 때문이다. 2025년 사진의 정이품송은 1971년 사진에 비해 왜소해졌고, 여러 개의 쇠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50여 년 동안 여름의 태풍과 겨울의 적설로 가지가 부러졌고, 솔잎혹파리의 위협과 외과수술을 받기도 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정이품송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지만, 앞으로도 오래도록 건재하길 빌어본다.

1971년 사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나무를 구경하는 연두색 저고리와 다홍색 치마, 즉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차려 입은 여성과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이다. 녹의홍상은 새색시의 복장이니, 아마도 속리산 법주사로 신혼여행 온 부부로 추정된다. 1970년대 법주사는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였다. 그때는 신랑은 양복 정장, 신부는 한복 차림으로 신혼여행에 나섰다. 법주사는 신라 때인 553년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한 절로,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어서 신라를 넘어 고려와 조선을 거치는 동안 많은 왕이 소원을 빌러 왔다. 새 출발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들이 법주사를 많이 찾은 이유는 절의 역사와 관련 있어 보인다.
 

2018년 6개의 다른 산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법주사 경내에는 각양각색의 건축미를 뽐내는 건물과 빼어난 조각 솜씨를 자랑하는 돌공예품이 널려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 신라시대 석등 가운데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 쌍사자석등의 국보가 있으며, 1990년 조성된 높이 33m의 청동미륵대불은 법주사의 새로운 상징이다. 길이가 5리쯤 된다고 붙여진 절 입구의 오리숲은 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어 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으며, 절을 참배하고 나면 속세에서 멀어지는 ‘속리(俗離)’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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