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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 경향신문연재 <반세기 기록의 기억> (110회) "서울역 고가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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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4-02-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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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찬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

인구 55%가 ‘민족 대이동’에 나섰다는 설연휴가 끝났다. 상당수가 서울역을 오고 갔을 것이다. 1900년 경인선 종점으로 영업을 개시한 남대문역은 1923년 경성역으로 개명되었고,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경성역사가 완공된 시기는 1925년이다. 도쿄역에 이어 동양 제2의 규모였다.

그러나 KTX 운행에 맞춰 2003년에 지금의 민자역사가 지어지면서 사진 속 구 서울역사는 폐쇄되었고, ‘문화역서울 284’란 이름의 전시용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993년에 지어진 24층의 연세재단세브란스빌딩 등이 1971년 사진에는 보이지 않고, 자동차도로 확장으로 서울역 광장이 크게 축소된 것도 눈에 띈다.

수많은 애환을 담은 서울역 광장 풍경이지만, 1971년 조성봉 선생이 찍으려 한 것은 서울역이 아닐 수도 있다. 사진의 전면에 걸쳐진 다리는 만리동과 회현동을 잇는 서울역고가도로인데, 사진 촬영 1년 전인 1970년 8월15일에 완공되었다. 조 선생은 필시 이것을 기록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994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85년 감사원 보고서에 서울역고가도로의 붕괴 위험이 이미 지적되었다. 하지만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군사정권은 쉬쉬하며 땜질로 넘어갔다. 이 고가도로는 ‘불도저’로 불린 서울시장 김현옥이 밀어붙인 부실공사 중 하나였다. 5·16 군사쿠데타의 가담자였던 김현옥은 안전모에 “돌격”이라 쓰고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이 서울의 땅과 하늘, 땅속을 바꿔 놓았다. 결국 이 돌격 작전은 1970년 4월8일 처참한 와우시민아파트 붕괴로 중단되었다.

이제 이 위로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2000년부터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은 고가도로를 2014년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욕의 하이라인공원처럼 고가 공원으로 바꿀 계획을 세웠고, 결국 2017년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하지만 전체가 흙으로 덮여 있고 주변 건물들로 인해 그늘이 있는 뉴욕의 하이라인과는 달리, 이곳은 시멘트 바닥 위에 띄엄띄엄 놓인 식물 화분들 위로 태양이 작렬하고 있다. 흙을 두껍게 깔면 그 무게를 고가가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길을 사람의 길로 바꾼다는 발상은 옳다. 하지만 고가 위에 화분을 놓는 것으로 그것이 될 리 만무하다. ‘대·자·보’, 대중교통과 자전거 및 도보 중심으로 서울을 재설계한다는 것은 단지 전시행정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대전환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https://v.daum.net/v/202402152016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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