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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 경향신문 연재 <반세기 기록의 기억> (63회) “부산 동래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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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1회 작성일 23-03-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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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치영 (한국학 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 교수)

부산 동래온천은 <삼국유사>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온천이다. 683년 신라의 재상인 충원공이 동래온천에서 목욕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그 온도가 닭을 익힐 수 있는 정도이며, 병을 지닌 사람이 목욕하면 바로 낫는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동래온천이 관광지로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이곳에 눈독을 들여온 일본인들이 1898년 한국 정부로부터 온천을 임차하면서부터이다. 20세기 초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여관이 속속 개업하였는데, 특히 부산에서 무역업으로 큰돈을 번 도요타 후쿠타로(豊田福太郞)는 1907년 온천을 직접 굴착하고 봉래관(蓬萊館)이라는 여관을 건립하였다. 봉래관은 일제강점기 내내 동래온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여관이었고, 넓은 정원과 연못을 갖추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동래온천을 찾은 관광객 가운데는 한국인도 적지 않았으며, 목욕탕에 온몸을 담그는 오늘날의 목욕문화가 이곳에서부터 확산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사진은 바로 봉래관 자리에 세워진 호텔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71년 사진은 1960년 문을 연 ‘동래관광호텔’이다. 왕관 모양의 상징이 그려진 커다란 호텔 간판이 옥상에 설치되어 있고, 방마다 발코니가 있는 건물이 꽤 인상적이다. 이 호텔은 초현대식 시설을 갖추어 1960~1970년대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다. 1980년대 제주도가 인기 여행지로 부각되기 전까지, 신혼부부들은 동래를 비롯해 온양, 부곡 등의 온천을 많이 찾았다. 필자도 부모님의 낡은 사진첩에서 1964년 봄 이 호텔을 배경으로 찍은 신혼여행 기념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동래관광호텔은 1985년 농심에서 인수하였고, 2002년 건물을 신축하여 ‘호텔 농심’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023년 사진에는 9층 규모로 신축한 호텔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1971년 사진에도 있는 한옥이 살짝 보인다. 이 한옥은 현재 호텔 부속 식당으로 쓰인다. 두 사진 모두에서 멀리 보이는 산은 금정산이다. 부산의 진산(鎭山)으로, 산성이 있으며 산의 북동쪽에 범어사(梵魚寺)가 있다. 과거에는 동래온천에 묵으며, 금정산과 범어사를 관광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칼럼에 게재된 신문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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