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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 경향신문 연재 <반세기 기록의 기억> (32회) "조선총독부 (중앙청)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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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21회 작성일 22-08-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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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치영 (한국학 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 전공교수)


다가오는 8월 15일은 77번째 맞이하는 광복절이다. 광복절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이루어진 ‘중앙청’의 철거이다. 광복절 아침 이 건물의 상징이었던 첨탑을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한 철거작업은 이듬해 11월 완료되었으며, 첨탑은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져 지금도 전시되고 있다. 중앙청은 1926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로 건립한 건물이어서,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자는 뜻으로 이 건물을 무너뜨렸다.

왼쪽 사진을 보면, 일제가 굳이 이곳에 당시 동양 최대의 건물인 조선총독부를 지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조선왕조의 심장인 경복궁 근정전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조선을 완전히 지배했음을 과시하는 표상이었다. 일제는 초현대식의 거대한 조선총독부와 버려진 초라한 조선 궁궐과의 대비를 통해, 사람들이 제국 일본의 우월함을 절감하도록 유도하였다. 이에 대해 반감을 표시한 일본인도 있었다. 이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경복궁을 관광한 한 유명한 일본 승려는 “실로 역사 깊은 궁전과 전면의 멋진 오래된 대문(광화문)이 버터 냄새 나는 건물로 일도양단(一刀兩斷)될 운명에 처했다”고 개탄하였다.
굴욕의 역사를 담은 조선총독부 건물은 해방 후 서울에 진주한 미군이 군정청으로 사용하면서 ‘capitol hall’이라 불렀다. 중앙청이란 이름은 정인보가 이를 직역하여 처음 붙인 것이라 한다. 1948년 정부 수립 후에는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주요 중앙행정기관이 자리 잡아 계속 중앙청으로 불렸다. 왼쪽 사진은 1970년 중앙청 서남쪽에 완공된 정부종합청사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는 1968년 복원한 광화문의 모습도 살짝 보인다. 이 청사와 함께 1982년 정부과천청사가 만들어지고 부처들이 이전하면서 행정부의 중심 역할을 하던 중앙청은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1986년에는 건물을 개조하여 23개의 전시실을 갖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였다. 오른쪽 사진은 중앙청이 말끔하게 사라진 경복궁의 모습이다. 새롭게 복원된 웅장한 광화문과 거기서 이어지는 높다란 담장,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의 중문인 흥례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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