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무상공유> 하려했던 천재해커의 비극적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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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7회 작성일 23-07-14 17:12본문
故 애런 스워츠(Aaron Swartz), 어느 천재 해커의 죽음
약관 26세의 천재 해커인 애런 스워츠(Aaron Swartz)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였다. 팀 버너스리, 제임스 핸들러, 팀 오라일리와 같은 구루와 로렌스 레식 등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와 관련된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면서 추모하고 있다.
그는 13세의 어린 나이로 RSS 규격 표준화에 참여하고 로렌스 레식 교수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기술 개발에 참여했으며 위키피디아의 편집자로서 활약했다. 스탠포드대 사회학과에 입학 후, 2학년 때 Y! Combinator의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만든 Infogrami를 Reddit에 매각한 뒤 창업 전선에서 일하다, Reddit이 매각 된 뒤 해고된다. 그 이후 Internet Archive의 Open Library 프로젝트와 위키백과 편집자로도 활약했다.
온라인 사회 운동가 모임인 디맨드 프로그레스(Demand Progress)를 조직하고, 온라인 저작권 침해 금지 법안(SOPA) 반대 활동도 했다. 한편으로 2009년 연방 법원 판례 데이터베이스인 PACER의 자료 20%를 다운로드 받아 공개했다가 고소 당한적 있었다.
보스턴 하버드대 인터넷 윤리 센터 연구원으로 이직한 이후, 2011년 1월에 MIT 학내망에서 온라인 논문 사이트인 JSTOR에서 다량의 저널 문서를 내려받은 일 때문에 체포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유가족 공식 성명을 보면 “그의 죽음은 단순히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불공정한 사법 제도에 기인한 것이며, 피해자가 없는데도 과도한
(백 만달러의 벌금과 30년형을 과도하게 구형한) 처벌을 요구한 지방 검사와 MIT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 보면 남들이 평생에 다 못할 일을 1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해낸 그야말로 천재적인 친구다. 그는 정말 순수하게 인터넷의 개방성을 높히기 위해 살아왔고 때로는 과격하게 싸워왔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아마 많은 파장이 일것 같다. ※ 참고글: 애런 스와츠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
벌써 부터 연구자들이 그를 추모해서 #pdftribute라는 해쉬태그로 자신의 PDF 논문을 무료로 배포하는 운동이 트위터에서 일어나고 있을 정도다.
한편으로는 그의 삶에 연민도 느껴졌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 보면 어리고 똑똑한 친구들을 가끔 본다. 중고등학생들이 학업이 아니라 특유의 호기심을 충족하러 기술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오기도 한다. (사실 나도 중학교 때 어떤 분야에 꽂혀서 교수님과 선생님으로 이뤄진 어떤 학회와 모임에 직접 나가기도 해 봤기 때문에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들 대부분 또래 보다 왕성한 지식 습득 능력으로 특정 분야를 파고 들면서, 사회 경험을 빨리 하고 어린 나이에 창업까지 하면서 애늙은이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너무 빠르게 세상을 모두 경험하고 나면 그만큼 빠르게 소모되어 버린다.
때문에 아론 역시 Reddit이 Wired의 모회사에 인수된 후, 심한 좌절을 겪었고 2007년 1월에 자살을 암시하는 유언을 블로그에 올려 그의 친구가 경찰을 부르는 일까지 있었다. 그로 부터 딱 6년이 지나서 해킹 행위에 대한 처벌 압박에 우울해 하던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사실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 또한 기대와 좌절을 겪는다. 특히 어린 나이에 성인이 겪을 정도의 고통을 거의 혼자 감내해 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80년대 기네스북에 210의 최고 IQ를 가진 한국의 천재였던 김웅용씨 역시 6살때 미적분을 풀고, 8살때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석박사과정에 입학 12살 때 부터 5년간 NASA에서 일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할까’ 하는 회의감에 빠졌고, NASA에서는 ‘계산과 예측’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의 재능만 필요로 했다”고 한다. (그는 20대 부터 완전히 평범한 삶으로 돌아와 어울리고 봉사활동하며 모처럼 인간다운 참맛을 체험하고 있다고 한다.)
아론의 2008년에 쓴 “How to Get a Job Like Mine“라는 글에는 일련의 삶의 경험을 볼 수 있다. 그의 삶은 호기심 충만에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했고, 주변에서 뭔가 요청하면 병적으로 “예스”라고 말해 항상 해야할 것을 옆에 두었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누군가는 할 것이라 여기고 포기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걸 실행으로 옮겼다. (그 때문에 그의 주변엔 열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매일 변화하면서, 그를 옥죄고 있었다.)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마 자살까지 이를 때 까지 그의 개인적 고민을 헤아려 주지 못한 안타까움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는 그의 천재성을 마치 도구로만 사용하고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13살때 부터 지금까지 삶을 불 태우는 동안, 누군가 그에게 개인적 쉼과 평범한 삶에서 얻는 평화로 이끌 조언을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더 오래 살아 남아서 더 많은 공헌을 하게 하지 못하도록 그를 재촉한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애런의 명복을 빌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비범한 것이라는 삶의 지혜가 생각 나는 하루다.
http://blog.creation.net/538
약관 26세의 천재 해커인 애런 스워츠(Aaron Swartz)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였다. 팀 버너스리, 제임스 핸들러, 팀 오라일리와 같은 구루와 로렌스 레식 등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와 관련된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면서 추모하고 있다.
그는 13세의 어린 나이로 RSS 규격 표준화에 참여하고 로렌스 레식 교수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기술 개발에 참여했으며 위키피디아의 편집자로서 활약했다. 스탠포드대 사회학과에 입학 후, 2학년 때 Y! Combinator의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만든 Infogrami를 Reddit에 매각한 뒤 창업 전선에서 일하다, Reddit이 매각 된 뒤 해고된다. 그 이후 Internet Archive의 Open Library 프로젝트와 위키백과 편집자로도 활약했다.
온라인 사회 운동가 모임인 디맨드 프로그레스(Demand Progress)를 조직하고, 온라인 저작권 침해 금지 법안(SOPA) 반대 활동도 했다. 한편으로 2009년 연방 법원 판례 데이터베이스인 PACER의 자료 20%를 다운로드 받아 공개했다가 고소 당한적 있었다.
보스턴 하버드대 인터넷 윤리 센터 연구원으로 이직한 이후, 2011년 1월에 MIT 학내망에서 온라인 논문 사이트인 JSTOR에서 다량의 저널 문서를 내려받은 일 때문에 체포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유가족 공식 성명을 보면 “그의 죽음은 단순히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불공정한 사법 제도에 기인한 것이며, 피해자가 없는데도 과도한
(백 만달러의 벌금과 30년형을 과도하게 구형한) 처벌을 요구한 지방 검사와 MIT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 보면 남들이 평생에 다 못할 일을 1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해낸 그야말로 천재적인 친구다. 그는 정말 순수하게 인터넷의 개방성을 높히기 위해 살아왔고 때로는 과격하게 싸워왔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아마 많은 파장이 일것 같다. ※ 참고글: 애런 스와츠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
벌써 부터 연구자들이 그를 추모해서 #pdftribute라는 해쉬태그로 자신의 PDF 논문을 무료로 배포하는 운동이 트위터에서 일어나고 있을 정도다.
한편으로는 그의 삶에 연민도 느껴졌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 보면 어리고 똑똑한 친구들을 가끔 본다. 중고등학생들이 학업이 아니라 특유의 호기심을 충족하러 기술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오기도 한다. (사실 나도 중학교 때 어떤 분야에 꽂혀서 교수님과 선생님으로 이뤄진 어떤 학회와 모임에 직접 나가기도 해 봤기 때문에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들 대부분 또래 보다 왕성한 지식 습득 능력으로 특정 분야를 파고 들면서, 사회 경험을 빨리 하고 어린 나이에 창업까지 하면서 애늙은이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너무 빠르게 세상을 모두 경험하고 나면 그만큼 빠르게 소모되어 버린다.
때문에 아론 역시 Reddit이 Wired의 모회사에 인수된 후, 심한 좌절을 겪었고 2007년 1월에 자살을 암시하는 유언을 블로그에 올려 그의 친구가 경찰을 부르는 일까지 있었다. 그로 부터 딱 6년이 지나서 해킹 행위에 대한 처벌 압박에 우울해 하던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사실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 또한 기대와 좌절을 겪는다. 특히 어린 나이에 성인이 겪을 정도의 고통을 거의 혼자 감내해 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80년대 기네스북에 210의 최고 IQ를 가진 한국의 천재였던 김웅용씨 역시 6살때 미적분을 풀고, 8살때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석박사과정에 입학 12살 때 부터 5년간 NASA에서 일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할까’ 하는 회의감에 빠졌고, NASA에서는 ‘계산과 예측’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의 재능만 필요로 했다”고 한다. (그는 20대 부터 완전히 평범한 삶으로 돌아와 어울리고 봉사활동하며 모처럼 인간다운 참맛을 체험하고 있다고 한다.)
아론의 2008년에 쓴 “How to Get a Job Like Mine“라는 글에는 일련의 삶의 경험을 볼 수 있다. 그의 삶은 호기심 충만에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했고, 주변에서 뭔가 요청하면 병적으로 “예스”라고 말해 항상 해야할 것을 옆에 두었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누군가는 할 것이라 여기고 포기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걸 실행으로 옮겼다. (그 때문에 그의 주변엔 열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매일 변화하면서, 그를 옥죄고 있었다.)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마 자살까지 이를 때 까지 그의 개인적 고민을 헤아려 주지 못한 안타까움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는 그의 천재성을 마치 도구로만 사용하고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13살때 부터 지금까지 삶을 불 태우는 동안, 누군가 그에게 개인적 쉼과 평범한 삶에서 얻는 평화로 이끌 조언을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더 오래 살아 남아서 더 많은 공헌을 하게 하지 못하도록 그를 재촉한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애런의 명복을 빌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비범한 것이라는 삶의 지혜가 생각 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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