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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 경향신문연재 <반세기 기록의 기억> (139회)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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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4-09-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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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중학생 때 남이섬을 처음으로 가족들과 놀러갔다. “남이장군 묘가 있어서 남이섬이라 하는데 원래는 섬이 아니었다”는 아버지 이야기가 신기했다. 일제강점기에 청평댐이 만들어지면서 북한강 수위가 높아져 내륙의 산이 봉우리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그 봉우리가 남이섬이다.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들어간 남이섬에는 크지 않은 수영장이 있었다.

대학 입학 후 남이섬에 1박2일 MT를 갔다. 섬을 왕래하는 배의 통행횟수가 많지 않아 가평역에서 배 시간에 맞추느라 선착장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선착장은 시골 장터처럼 붐볐는데 남이섬에서 열리는 1984년 MBC 강변가요제 방송 때문이었다. 남이섬 중앙 잔디밭에 세워진 무대에서 이선희가 부른 ‘J에게’가 대상을 차지했다. 방갈로라는 낯선 용어인 숙박시설에서 대학생들의 통기타 소리가 강물처럼 평온하게 흘러가는 낭만의 섬이었다.

방송사 PD가 되어 남이섬 촬영 헌팅을 1995년에 왔다. 서울에서 접근성도 좋고 넓은 잔디밭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어린이들 뛰어노는 모습을 담아내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상륙한 남이섬은 뽕짝가요 메들리 소음이 끊이지 않았고 고성방가에 카바레까지 영업하는 지저분한 삼류 유원지로 전락해 있었다. 첫사랑을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피천득의 수필 ‘인연’처럼 남이섬을 세 번째 방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북한강물에 침몰한 줄 알았던 남이섬이 다시 솟아올랐다. 자연풍광을 회복하기 위해 군인들까지 동원되어 3년에 걸쳐 섬에 널려 있던 술병과 쓰레기들을 다 치웠다. 이러한 노력으로 <겨울연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남이섬은 한류의 시발점이 되었다.

2024년 남이섬 선착장 사진 속의 배를 보면 태극기와 함께 상상의 나라인 ‘나미나라 공화국(남이섬)’ 깃발이 걸려 있다. 공화국 숙소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그 대신 책과 일기장이 있다. 달 밝은 밤에는 가로등을 소등해 밤하늘 별빛을 만끽하게 해준다. 이뿐만 아니라 섬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70% 이상 재활용하는 자연 친환경적인 여행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시작된 한강이 서해로 흘러가듯, 한류의 발원지인 ‘남이섬’에서 시작된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존중하는 ‘관광 매력’은 K콘텐츠 한류 물결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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