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수스조합원 김상철 감독 연출 영화<부활>에 대한 박정인 박사의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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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97회 작성일 20-07-18 11:40본문
[메가경제신문= 박정인 해인예술법연구소장]영화 '부활'(감독 김상철)은 가벼운 영화가 가득한 시대, 마치 긴 여행길을 떠나는 여행자에게 지도를 가슴주머니에 꽂아주는
어머니처럼 영화는 지혜 한 줄과 같은 우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고기는 바다를 나오면 죽는대... 즉,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기 전에는 바다 너머 세상을 볼 수 없고, 내가 나온 바다를 비로소 볼 수 있을 때는 이미 그 물고기는 죽었단다..."
영화는 모두 피하고 싶었던 바다 너머 죽음에 대해 확신을 가진 자들에 대해 소개한다.
살아서는 전설이었으며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이 되었던 예수,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바꾼 사도 바울,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으나 그것을 넘어서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던 도마와 빈민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던 세실리아 등, 그들이 죽음을 넘어 신을 향해 담대하고 자유로우며 초점을 잃지 않고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바다라는 죽음 너머의 세상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불확실한 삶을 살아간다. 나는 그들의 확신에 찬 삶이 진정 부럽다. 매일 의심하고 지식의 숲을 가시덤불처럼 조심하고 조심하며 살아가는 나와 같은 일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삶의 지표를 단순화하고 열정을 퍼붓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위축되기까지 한다.
영화는 부활을 스티그마(Stigma·오명)의 관점에서 우리가 미처 성찰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어머니가 아이에게 게살을 섬세하게 발라주고 징검다리를 통해 물을 건너올 수 있듯이 설명한다.
즉, 삶과 죽음, 어둠과 빛, 상처와 상흔, 부활의 증인과 같은 4개의 테마로 기독교의 논리적 개념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삶과 죽음'
영화는 4대째 기독인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성혜 자매가 2011년 미스코리아가 되어 외적으로는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한번뿐인 인생에서 어떠한 가치에 집중해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면서 바라나시(Varanasi·인도 북부 갠지스강 중류에 위치한 도시)를 향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인생길을 상징적으로 치환한다.
그녀는 오롯이 걷고 걸으며 생각하여 예수님이 기쁘게 자신의 인생을 예배로 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청소년 사역자에서 문화 사역자가 되어 가는 과정 중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를 찾는다.
그녀는 갠지스강에서 디아(연등)를 띄워보내는 것을 보기도 하고,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의 푸자의식, 신과 의사소통을 하는 의식과 몇 시간 전에는 우리와 함께 살았었던 사람의 화장 모습, 신성한 불꽃인 아그니에 의해 태워져 재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사람들은 삶에는 조명을 비추면서 죽음은 보기 싫은 것으로 취급하며 어디론가 치워버려 점차 죽음을 직면하지 못하고 미화되는 가운데 종교의 자리가 현대에서 계속 밀려나고 있는 위기를 보여준다. 즉 삶과 죽음을 말하는 종교는 사방의 안개에 갇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계속 방해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고난과 고통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고난과 고통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이어령 교수는 "태어난 순간 죽음을 같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잃어버리고 죽음이 죽어버린 사회가 되었다"고 비평가답게 말한다.
결국 사람들은 죽음을 고려하지 않을 때 인간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을 잃어버리고 오만으로 지상에서 자신의 번뇌만을 벗어버리기 위해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귀결되어 예수님과는 정반대의 삶의 방향을 가지게 된다.
'어둠과 빛'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죽음과 부활을 함께 믿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의 화려함 아래 존재했던 '카타콤(Catacomb)', 즉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숨어살아야 했던 지하의 무덤을 영화는 보여주면서 기독인의 핍박을 통해 종교 삶의 이정표로 삼았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바울, 도마, 세실리아와 같이 그들이 믿음을 가지게 된 방법은 비록 달랐지만 그러한 믿음을 실행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했던 어둠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혹했음을, 영화는 바울이 참해지기 전 갇혀있던 감옥을 보여주면서, 도마와 세실리아의 조각상을 보여주면서 그가 참수형 직전 어떠한 심경이었을지를 헤아리게 한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천정은 자매의 삶이었다. 그녀는 예전에는 죽음이 거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죽음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죽음을 암을 통해 정면으로 목격하고 자신의 여정에서 주님이 주신 소명, 자신의 길을 완주해나가기로 한다.
내안의 내가 완전히 죽어야 예수님이 부활한다는 것을, 암을 통해 진리에 다가가는 천정은 자매의 행보는(항암 80차 진행) 웃고 있는 모습이 그 자체로 가슴을 울린다.
그녀는 영적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주님께 적합한 질문을 하고 적합한 답변을 얻으며 (질문을 잘해야 답을 스스로 구할 수 있음이다) 자신의 길을 찾아나간다. 그녀가 택한 삶은 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그들과 똑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우리는 모두 죽을 건데 차라리 자신은 암에 걸려 참 다행이고 그래서 진리를 찾을 시간을 얻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천정은 자매의 미소가 한줄기의 밝은 빛인 레이저광선이 되어 영화 상영 내내 나의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내장을 모두 찔러댔다.
그녀는 항암환자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이 남보다 조금 더 치유된다는 것 역시 오히려 남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주님께 온전히 다가갈 수 있게 기도하고 얼마후 그녀의 암은 재발된다. 나라면 주님을 원망할 것 같은데 그녀는 암의 재발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믿음을 통해 못할 것이 없고 그녀가 구원한 영혼의 평안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상처와 상흔'
이어령 교수는 톨스토이의 명작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말하면서 극심한 고통으로 죽어가던 주인공이 아들이 흘려주는 눈물을 통해 구원받는 장면을 설명한다.
주인공은 죽음이 다가오는 병마의 고통으로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오직 슬픔만이 가득한 가운데, 오직 내가 고통스러운 것만 생각했을 뿐 타인에게 내가 주는 고통들에 대해서는 미처 성찰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그를 향한 뜨거운 눈물 한방울의 구원을 얻으며 죽어간다. 이 교수는 이것이 우리 인생의 압축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구멍나고 상처난 삶은 흔하여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간직한 채 극복하는 인생, 상흔을 간직한 인생은 흔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이는 복음의 자세와도 관련되어 있다. 상처를 스스로 극복한 사람은 그 자체로 백신이므로 다른 사람을 보다듬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치유력이 있다. 영적 성장은 그와 같이 상처를 입은 인간 그 자체로 머물지 않고 그를 극복하는 주님이 주신 인생을 성실하게 사는 자세에 있다고 할 것이다.
'부활의 증인'
영화는 할 일을 다 마친 형제자매들의 소천, 장례식장의 풍경을 조감하게 하면서 욥은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욥을 신뢰하는 강도에 대해 말한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생각이 크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영성이 커질수록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욕망과 이기주의적 속성을 견디고 온전히 인간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성장과정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돌고 돌아도 죽음에 다다르고 빠져나갈 수 없다. 천정은 자매의 인생을 통해 우리는 복음의 자세와 무모하고도 어려운 도전이지만 사람 속에서 사랑을 전하려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는 기도를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는 그 마음이 내 안에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천정은 자매와 같은 삶은 흔하지 않다.
그저 나이라는 가지런한 숫자 앞에서 죽음을 보다 더 잘알고 있다고 오만한 기독인과 비기독인에게 김상철 감독은 천정은 자매를 통한 가정법을 사용하여 매력적인 윈도를 준다.
이 영화는 볼거리의 영화가 아니다. 어쩌면 볼거리가 아니라 생각할 거리에 매달리는 영화이다. 미디어 사역이 중요한 시대, 예수의 재난과 천정은 자매의 재난을 윈도로 하여 인간에게 종교라는 성수에 서서히 젖어가도록, 김 감독은 진실되고 가감없이 죽음의 성찰을 부활의 이름으로 이끌어낸다.
김상철 감독은 2009년 기독 영상인 '잊혀진 가방'을 감독하면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어 '중독' '순교' '제자 옥한흠'에 이어 MBC 성탄 다큐멘터리 '부활' 등을 연출했다.
그는 영상을 통해 죽음 너머의 빛을 소망하며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부활을 목격하는 증인의 삶이라고 증언한다. 그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이같은 세상의 정신을 위해, 미래세대가 저작권이라는 자본가중심 법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콘텐츠를 무상공유하자는 셀수스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개봉을 앞둔 영화 '부활'은 MBC 성탄 다큐멘터리 '부활'과는 70% 이상 다른 작품인데 그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카메라를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에피소드 역시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 영화 '부활'은 '원스' '지슬' '위대한 침묵' 등 인생영화를 배급하는 영화사 진진이 배급을 맡아 더 많은 기독인들과 비기독인들 앞에 상영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곧 개봉하는 영화 '부활'을 통해 일반인 누구나가 영화 속 카타콤, 푸자의식, 이어령 교수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비평과 같은 상흔 상징들을 이해하며, 나의 존재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죽음이 과연 슬프기만 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게 되길 바란다.
http://www.mega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627
어머니처럼 영화는 지혜 한 줄과 같은 우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고기는 바다를 나오면 죽는대... 즉,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기 전에는 바다 너머 세상을 볼 수 없고, 내가 나온 바다를 비로소 볼 수 있을 때는 이미 그 물고기는 죽었단다..."
영화는 모두 피하고 싶었던 바다 너머 죽음에 대해 확신을 가진 자들에 대해 소개한다.
살아서는 전설이었으며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이 되었던 예수,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바꾼 사도 바울,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으나 그것을 넘어서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던 도마와 빈민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던 세실리아 등, 그들이 죽음을 넘어 신을 향해 담대하고 자유로우며 초점을 잃지 않고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바다라는 죽음 너머의 세상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불확실한 삶을 살아간다. 나는 그들의 확신에 찬 삶이 진정 부럽다. 매일 의심하고 지식의 숲을 가시덤불처럼 조심하고 조심하며 살아가는 나와 같은 일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삶의 지표를 단순화하고 열정을 퍼붓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위축되기까지 한다.
영화는 부활을 스티그마(Stigma·오명)의 관점에서 우리가 미처 성찰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어머니가 아이에게 게살을 섬세하게 발라주고 징검다리를 통해 물을 건너올 수 있듯이 설명한다.
즉, 삶과 죽음, 어둠과 빛, 상처와 상흔, 부활의 증인과 같은 4개의 테마로 기독교의 논리적 개념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삶과 죽음'
영화는 4대째 기독인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성혜 자매가 2011년 미스코리아가 되어 외적으로는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한번뿐인 인생에서 어떠한 가치에 집중해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면서 바라나시(Varanasi·인도 북부 갠지스강 중류에 위치한 도시)를 향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인생길을 상징적으로 치환한다.
그녀는 오롯이 걷고 걸으며 생각하여 예수님이 기쁘게 자신의 인생을 예배로 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청소년 사역자에서 문화 사역자가 되어 가는 과정 중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를 찾는다.
그녀는 갠지스강에서 디아(연등)를 띄워보내는 것을 보기도 하고,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의 푸자의식, 신과 의사소통을 하는 의식과 몇 시간 전에는 우리와 함께 살았었던 사람의 화장 모습, 신성한 불꽃인 아그니에 의해 태워져 재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사람들은 삶에는 조명을 비추면서 죽음은 보기 싫은 것으로 취급하며 어디론가 치워버려 점차 죽음을 직면하지 못하고 미화되는 가운데 종교의 자리가 현대에서 계속 밀려나고 있는 위기를 보여준다. 즉 삶과 죽음을 말하는 종교는 사방의 안개에 갇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계속 방해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고난과 고통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고난과 고통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이어령 교수는 "태어난 순간 죽음을 같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잃어버리고 죽음이 죽어버린 사회가 되었다"고 비평가답게 말한다.
결국 사람들은 죽음을 고려하지 않을 때 인간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을 잃어버리고 오만으로 지상에서 자신의 번뇌만을 벗어버리기 위해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귀결되어 예수님과는 정반대의 삶의 방향을 가지게 된다.
'어둠과 빛'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죽음과 부활을 함께 믿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의 화려함 아래 존재했던 '카타콤(Catacomb)', 즉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숨어살아야 했던 지하의 무덤을 영화는 보여주면서 기독인의 핍박을 통해 종교 삶의 이정표로 삼았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바울, 도마, 세실리아와 같이 그들이 믿음을 가지게 된 방법은 비록 달랐지만 그러한 믿음을 실행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했던 어둠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혹했음을, 영화는 바울이 참해지기 전 갇혀있던 감옥을 보여주면서, 도마와 세실리아의 조각상을 보여주면서 그가 참수형 직전 어떠한 심경이었을지를 헤아리게 한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천정은 자매의 삶이었다. 그녀는 예전에는 죽음이 거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죽음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죽음을 암을 통해 정면으로 목격하고 자신의 여정에서 주님이 주신 소명, 자신의 길을 완주해나가기로 한다.
내안의 내가 완전히 죽어야 예수님이 부활한다는 것을, 암을 통해 진리에 다가가는 천정은 자매의 행보는(항암 80차 진행) 웃고 있는 모습이 그 자체로 가슴을 울린다.
그녀는 영적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주님께 적합한 질문을 하고 적합한 답변을 얻으며 (질문을 잘해야 답을 스스로 구할 수 있음이다) 자신의 길을 찾아나간다. 그녀가 택한 삶은 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그들과 똑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우리는 모두 죽을 건데 차라리 자신은 암에 걸려 참 다행이고 그래서 진리를 찾을 시간을 얻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천정은 자매의 미소가 한줄기의 밝은 빛인 레이저광선이 되어 영화 상영 내내 나의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내장을 모두 찔러댔다.
그녀는 항암환자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이 남보다 조금 더 치유된다는 것 역시 오히려 남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주님께 온전히 다가갈 수 있게 기도하고 얼마후 그녀의 암은 재발된다. 나라면 주님을 원망할 것 같은데 그녀는 암의 재발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믿음을 통해 못할 것이 없고 그녀가 구원한 영혼의 평안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상처와 상흔'
이어령 교수는 톨스토이의 명작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말하면서 극심한 고통으로 죽어가던 주인공이 아들이 흘려주는 눈물을 통해 구원받는 장면을 설명한다.
주인공은 죽음이 다가오는 병마의 고통으로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오직 슬픔만이 가득한 가운데, 오직 내가 고통스러운 것만 생각했을 뿐 타인에게 내가 주는 고통들에 대해서는 미처 성찰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그를 향한 뜨거운 눈물 한방울의 구원을 얻으며 죽어간다. 이 교수는 이것이 우리 인생의 압축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구멍나고 상처난 삶은 흔하여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간직한 채 극복하는 인생, 상흔을 간직한 인생은 흔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이는 복음의 자세와도 관련되어 있다. 상처를 스스로 극복한 사람은 그 자체로 백신이므로 다른 사람을 보다듬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치유력이 있다. 영적 성장은 그와 같이 상처를 입은 인간 그 자체로 머물지 않고 그를 극복하는 주님이 주신 인생을 성실하게 사는 자세에 있다고 할 것이다.
'부활의 증인'
영화는 할 일을 다 마친 형제자매들의 소천, 장례식장의 풍경을 조감하게 하면서 욥은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욥을 신뢰하는 강도에 대해 말한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생각이 크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영성이 커질수록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욕망과 이기주의적 속성을 견디고 온전히 인간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성장과정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돌고 돌아도 죽음에 다다르고 빠져나갈 수 없다. 천정은 자매의 인생을 통해 우리는 복음의 자세와 무모하고도 어려운 도전이지만 사람 속에서 사랑을 전하려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는 기도를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는 그 마음이 내 안에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천정은 자매와 같은 삶은 흔하지 않다.
그저 나이라는 가지런한 숫자 앞에서 죽음을 보다 더 잘알고 있다고 오만한 기독인과 비기독인에게 김상철 감독은 천정은 자매를 통한 가정법을 사용하여 매력적인 윈도를 준다.
이 영화는 볼거리의 영화가 아니다. 어쩌면 볼거리가 아니라 생각할 거리에 매달리는 영화이다. 미디어 사역이 중요한 시대, 예수의 재난과 천정은 자매의 재난을 윈도로 하여 인간에게 종교라는 성수에 서서히 젖어가도록, 김 감독은 진실되고 가감없이 죽음의 성찰을 부활의 이름으로 이끌어낸다.
김상철 감독은 2009년 기독 영상인 '잊혀진 가방'을 감독하면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어 '중독' '순교' '제자 옥한흠'에 이어 MBC 성탄 다큐멘터리 '부활' 등을 연출했다.
그는 영상을 통해 죽음 너머의 빛을 소망하며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부활을 목격하는 증인의 삶이라고 증언한다. 그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이같은 세상의 정신을 위해, 미래세대가 저작권이라는 자본가중심 법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콘텐츠를 무상공유하자는 셀수스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개봉을 앞둔 영화 '부활'은 MBC 성탄 다큐멘터리 '부활'과는 70% 이상 다른 작품인데 그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카메라를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에피소드 역시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 영화 '부활'은 '원스' '지슬' '위대한 침묵' 등 인생영화를 배급하는 영화사 진진이 배급을 맡아 더 많은 기독인들과 비기독인들 앞에 상영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곧 개봉하는 영화 '부활'을 통해 일반인 누구나가 영화 속 카타콤, 푸자의식, 이어령 교수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비평과 같은 상흔 상징들을 이해하며, 나의 존재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죽음이 과연 슬프기만 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게 되길 바란다.
http://www.mega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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