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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택주 Mar 26. 2021

코로나 시대 비대면 강연 9 to 9

생태동화작가 권오준, 강연자에게 강연하다

3월 23일 저녁, 북크루와 생태동화작가 권오준이 어깨동무해 “강연가를 위한 강연”을 비대면으로 열었다. 말을 주고받는 화상회의와는 달리 두 시간 가까이 화면을 보며 혼자 얘기하기란 여간 멋쩍은 일이 아니다. 한 해 400강이 넘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맛깔스러운 입담과 용솟음치는 열정, 용광로처럼 쏟아내는 빠른 말솜씨가 어우러진 결과일까? 대면보다 더 맛깔나는 비대면 강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뭘까?     


얼음이 녹은 그 자리에

십 년 전. 강연하겠다고 마음먹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부탁해서 노인정에 아파트 주민들을 모아놓고 무료 강연을 시작했다. 동네 책방이며 작은 도서관,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거푸 무료 강연을 하며 깨달은, 으뜸가는 강연 비결은 “재미있고 또 재밌고 더 재밌어야 한다.”이었다.     

재미, 재미, 재미 또 재미...

처음은 누구나 서툴다. 거듭 이어지며 익숙해진다. 강연자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쭈뼛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낯선 작가 앞에선 아이들은 그대로 ‘얼음’이다. 이 얼음을 바로 녹이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 강연 청탁을 처음 받고는 흰곰 인형 하나 달랑 들고 들어간 권오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여러분 안녕!” 인사를 건넨다. 그리곤 바로 곰 인형 코를 바닥에 대고, 똑같이 바닥에 엎드려 “킁킁” 냄새 맡는다. 아이들은 “와! 북극곰이다.” 하면서 저희도 엎드려서 킁킁거린다. 얼음이 녹아내린 그 자리에 어울림이 싹튼다.    

 

강연장은 무대이고 모두가 배우

가만히 서서 강연한 적이 없는 권오준. 언제나 온 강연장을 무대 삼아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온 강연장이 무대이고 모두가 배우다. 대사가 없는 배우도 없다. 주어진 첫 미션은 언제나 ‘말 못 하는 아이 내 편 만들기’다. 철옹성 같던 입이 열리는데 길어야 10분이다. 물음이 “새는 왜 날아가면서 똥을 눌까?” 따위인데 엉뚱한 답을 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어떤 답에도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사이사이 숫기가 없는 아이라도 눈을 맞추고 귀를 가져다 대며 어울리고 싶은 아이 속내를 헤아리며 북돋운다. 이런 아이일수록 저를 알아준다 싶으면 바로 달아오른다. 이제 아이들은 빠짐없이 손을 든다. “저요.” “저요.” “나요.” “아하, 나요.” “선생님! 여기요.” 강연장이 시끌벅적하다. 

권오준이 도곡정보문화도서관에서 펼친 세계희귀북마크토슨트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이가 손을 번쩍 들다

권오준이 펼치는 강연은 그대로 공연이다. 북 콘서트에서는 연극이 펼쳐지기도 하고 마법사와 콜라보하여 책을 펼치면 비둘기가 날아가는 마술을 선보이기도 하고, 소프라노 가수와 듀엣으로 노래하며, 북 뮤지션과 어우러지는 강연은 그대로 어울림 마당극이다.


입이 터지면 가슴도 열려

닫힌 입이 열리고 나면 어떤 아이라도 넉넉해진다. 강연회를 마치면 사인회다. 폰케이스나 필통, 가방이나 물통처럼 아끼는 것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는데, 흔히 내미는 것이 실내화다. 제천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한 아이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린다. ‘바지에?’라고 생각하는데 바짓단을 걷어 올린다. 하얗게 드러난 의족을 내밀며 사인해달란다. 살짝 묻는다. “말 안 해도 되는데, 괜찮으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 줄 수 있겠니?” 쌍둥이인데 태에 있을 때 동생 탯줄이 다리에 감겨서 태어나자마자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단다. “창피하지 않아요. 제 잘못으로 그런 게 아니잖아요.” 하는 아이, 의젓하다. 의족에 <숲속의 어느 날> 주인공 웜벳을 그려줬다. 울림이 컸던 권오준, 반경 50km 이내에 강연하러 올 일이 있으면 반드시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그동안 두 번 가서 한 번은 헛걸음, 한 번 만났다. 또 둘레에 갈 날을 기다린다는 권오준. 약속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사인해달라고 의족을 올려놓은 아이, 의족에 웜벳을 그리고 사인하다

비대면 강연더욱 뜨겁게 달궈야

비대면 강연은 다를까? 아니다. 종이와 연필을 꺼내라고 해서 쉴 새 없이 묻고 답하도록 한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쉬운 비대면 강연에서는 더욱 얘기하는 사이사이에 거듭 물으며 더욱 뜨겁게 달궈야 한다. 온라인 강연에서 물음은 답이 OX이거나 1번과 2번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집중하기 어려운 비대면 강연은 2부로 나눠 40분하고 10분 쉬고 이어가는 것이 좋다. 1부를 마치면서 2부에 행운권 추첨이 있다고 알린다.


강연 비결 9 to 9

대면 비대면을 가리지 않고 권오준이 털어놓은 강연 비결 아홉 넝쿨은 다음과 같다. 1) 시작부터 재밌어야 2) 빠르게 말해야 3) 눈높이 맞춰야 4) 멈추지 말아야 / 끊임없이 움직이라 5) 손을 들려야 / 거듭 물어라 6) 못하는 아이를 내 편으로 7) 스토리 만들어야 8) 열광토록 해야 9) 강연 늘리려면?


강연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①일단 나서고 ②온라인 크레딧을 쌓아라 ③콜라보레이션 하라 ④강연 기획을 스스로 하라 ⑤다양한 레파토리로 무장하라 ⑥즐겨 사람을 만나라 ⑦아이들 체험 거리 남다르게 찾아라 ⑧비대면일수록 놀라움을 줘야 ⑨거듭 새롭게 탈바꿈하라


터닝포인트를 맞을 때까지

강연 청탁을 한 번이라도 받은 사람은 한 해에 100번이 넘는 강연을 할 수 있다는 권오준. 강연을 열면서 캐쥬얼 신발 브랜드 허시파피(Hush Puppies) 본보기를 꺼낸다. 1958년에 태어나 30여 년을 이어온 브랜드 허시파피. 새로운 흐름을 타지 못해 매출이 내리꽂힌다. 견딜 수 없다고 여긴 허시파피, 재고떨이한다. 이때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사는 히피 아이 몇몇이 아무도 신지 않으니 남다르다며 사서 신고 다니고,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신으며 주춤주춤 오름세를 탄다. 

'어? 그만두면 안 되겠구나.' 생각한 허시파피 경영진, 슬그머니 재고떨이 펼침막을 걷어들인다. 1995년 가을 뉴욕 패션쇼에서 디자이너들이 앞다퉈 모델에게 허시파피를 신기며 솟구쳐 오른다. 1994년에 3만 켤레밖에 팔지 못한 허시파피. 1995년에 43만 켤레, 1996년에는 170만 켤레나 팔았다.

동백꽃으로 날아드는 꿀벌 / 카피레프트 셀수스협동조합 강하연 작가 빛그림

하루에 꽃 6,000송이 찾는 꿀벌처럼

지금 잡힌 강연만 90개, 강연 섭외 누가 했을까? 권오준은 강연장에서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한 해에 400회가 넘는 강연을 하는 틈틈이 강연으로 오가는 차 안에서 쉬지 않고 전화 걸어 안부를 묻는다. 강연장으로 가고 오는 길목에 있는 도서관과 학교, 출판과 강연기획자들을 끊임없이 만나며 전국에 있는 책 전시회도 빠지지 않고 간다. 권오준을 보면 꽃을 하루에 6,000송이나 찾아다닌다는 꿀벌이 떠오른다.


묻고 답하다

강연 청탁을 받는데 많은 책을 써야 할까 똘똘한 한 권이면 될까?

아무개 하면 딱 떠오를 힘 있게 밀어 올린 책이 있어야


엄마와 아이 또는 전 학년 앞에서 강연할 때 눈높이를 어디에 맞춰야 할까?

엄마와 아이 앞에서는 ‘아이’에게 전 학년 앞에서는 ‘저학년’에 맞춰야.


가장 인상 깊은 강연과 가장 힘들었던 강연은?

유치원에서 북극곰 냄새 맡기가 인상에 남고, 성인 인문학 강연이 힘들었다.


전교생 앞에 서면 진땀 난다. 무대에 올리고 나서 뒷수습이 두려운데?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우르르 움직일 때 “얘들아. 잠깐!”하고 불러 세워 “나무늘보 속도로 나와야 해. 누가 더 나무늘보 같을까?” 하면 아이들은 이제 그대로 슬로비디오다.


준비한 강의자료가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용이 내 귀에 뿌리내리도록 거듭 연습하여 실전에 나서야.


중학교에서 강연하는데 “선생님 팬티 색깔이 뭐예요?” 묻더라. 머뭇거리다가 “그걸 왜 묻니?” 하고 했다. 잘못 말했을까? (물은 사람은 남자다)

신을 벗고 교실에 들어서는 데 어떤 애가 “양말 빵꾸났어요.” 하더라. “엄지발가락이 너희를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뚫고 나왔겠어.” 했다. 있는 그대로 말하라. 따지거나 잘못이라 짚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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