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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조합의 경향신문 연재 <반세기, 기록의 기억> (3회) 한국자유총연맹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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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10회 작성일 22-01-2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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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의 성지에 숨겨진 ‘중정의 그림자’ 

글쓴이 :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

남산 국립극장 건너편에는 ‘자유센터’가 있는데 거기에는 ‘KFF 한국자유총연맹’이란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50년 전의 사진에는 이 간판 대신 ‘한국반공연맹’이란 이름이 보인다. 1961년 5월 박정희 장군의 군사쿠데타가 성공했을 때 미국은 처음에 이 쿠데타의 성격을 의심했다. 해방 후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담했었고 그의 형 박상희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서 대구 10·1사건 때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장군은 미국의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고 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1961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을 방문하여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을 먼저 제안했다. 자유센터 건립도 그 일환이었다. 1962년 아시아반공연맹 결의로 시작된 자유센터 건립은 1964년에 완공되었고, 그해 초 설립된 한국반공연맹이 입주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유센터는 쿠데타 정부가 최초로 추진한 국가 건축 프로젝트였다.

이 자유센터를 설계한 사람은, 박종철 열사가 고문사한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을 설계한 천재 건축가 김수근이다. 워커힐호텔 설계에 참여하던 중 김종필의 신임을 얻은 김수근은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는 “자유의 냄새가 물씬 나도록 설계해 달라”는 김종필의 주문을 받고 이 자유센터를 설계했다. 김수근은 발주자의 의도를 읽는 데에도 천재적이었다. 하늘로 말려 올라간 압도적인 곡면 지붕, 사진 왼쪽에 보이는 거대한 수직의 열주들, 중앙의 길고 거대한 계단, 천장까지 통해 있는 널찍한 로비, 대중 집회가 가능한 대규모 광장 등은 이곳이 ‘반공’이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웅변하는 콘크리트 신전으로 헌정된 것임을 잘 보여준다.

냉전이 종식되고 반공 이데올로기도 시들해지자 건물은 그 쓰임새가 빈약해졌다. 현재 자유센터의 일부 공간은 웨딩홀, 택배회사, 식당, 자동차극장 등의 용도로 쓰이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이 뭘 하는 단체인지 잘 모르는 사람은 이곳이 반공의 ‘성지’였다는 것을 알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자유센터가 공공연하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포할 때, 남산의 다른 곳,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진 중앙정보부에는 음습한 지하 고문실의 악마가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자유센터와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자가 동일인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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